그대 내게 무엇입니까

얼마 전, 추석 연휴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넷플릭스를 켰다. 거기서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는 스페인 드라마 <엘리트들>이었다. 스페인의 상류층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사랑과 우정, 또 우발적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는 과정이 그려진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스페인 판 <스카이캐슬>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매력적인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던 이 드라마는 연휴가 끝나감을 거부하는 내 반항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재미를 주었다. 

드리마 <엘리트들(Elite)>

내가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드라마 안에서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좋은 한 때를 보내는 모습. 또 어떨 땐 삼각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고, 이별 때문에 울기도 하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 물론 사랑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고, 이는 이 드라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속엔 사랑 때문에 웃는 장면들보다는 눈물 흘리고 가슴 치는 장면이 더 많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게 다 좋아 보였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한창 그런 경험이 필요한 시기에 마음껏 사랑해보고 또 아파해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삼십 대 중반의 아저씨가 방구석에서 스페인 하이틴 드라마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모습이 가히 처량하다. ‘아재, 정신 차리소’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뭐 별수 있을까. 이게 내 모습인데. 난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이들처럼 그때 충실했어야 할 감정들에 충실하지 못했지만, 억누르며 보낸 젊은 시절을 아무리 후회한다 한들 지나간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지금 수도자이지 않은가. 늦바람이 난다 하더라도 도저히 제대로 나긴 힘든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청빈-정결-순명’이 새겨진 수도자라는 옷.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때로 수도 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경당에 앉아 원망하듯 십자가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조용히 침묵 속에 머무르며 예수님을 바라보아도, 바랐던 평화보단 화가 불같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마음을 달래보려 해도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럴 땐 감히 예수님께 이런 말도 하곤 했다. “예수님, 저를 괴롭히려고 여기로 부르셨나요? 부디 저를 그만 괴롭혀 주세요……” 욥이 놀랄 정도의 이런 배은망덕한 기도를 바치는 게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여기로 부르신 것이라면, 그분께서 응당 내가 여기에 이런 꼴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답을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의 교리가 이야기하듯 창조주가 정말로 ‘사랑 가득한 신’이기 위해서는, 피조물들이 절규하며 던지는 모든 질문에 눈물을 닦아줄 만한 답을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있어 저를 당신 안에 쉬게 해 주겠습니까? 누가 있어 당신께서 제 마음으로 오시고 그 마음을 취하게 만드셔서 저로 하여금 저의 악을 잊고서 당신을 저의 유일한 선으로 여겨 얼싸안게 만들겠습니까? 제가 당신께 무엇이기에 저 같은 것에게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하십니까? 당신께서는 제게 무엇이 되십니까? 주, 저의 하느님,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저에게 당신이 무엇이 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영혼에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너의 구원이다.(시편 35,3)”라고. 당신의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십시오. 뵙고 싶어 죽겠습니다. 안 죽으려고 당신 얼굴을 뵙지 못하느니(탈출 33,20) 나는 차라리 뵙고서 죽으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염 역, 「고백록」 중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처절한 외침이 사무친다. ‘당신께서는 제게 무엇이 되십니까’라는 성인의 표현처럼, 예수님은 나에게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왜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뒤로 한 채 예수님을 선택하고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왜 스스로 채울 수 없는 텅 빈 가슴을 오직 그분께서 채워주시길 바라며 예수님 앞에 서 있는가.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나의 이 질문들에 답해 주시길, 젊음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힘겨워하는 이 청년 수사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 얼굴을 비추어주시길 청해본다. 

오, 예수님, 그대 내게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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