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옥수수

나는 옥수수를 좋아한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정문에는 떡볶이와 어묵, 옥수수를 파는 트럭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옥수수 냄새가 정말 맛있게 나서 나는 하굣길마다 자주 ‘집에 가서 엄마한테 용돈 받아와야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당시 나는 옥수수를 먹을 때 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깨끗하게 뜯어먹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외할머니 덕이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면 늘 빼놓지 않고 사오시던 것은 그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정문 앞 옥수수였다. 할머니는 여름에나 겨울에나 손주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꼭 검은 봉다리 하나를 손에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학교 끝나고 돌아온 우리를 주르륵 앉혀놓고 옥수수 알갱이를 손으로 한 알 한 알 떼어 주셨다. 처음에는 뜨거워 손도 대지 못하겠던 옥수수가 할머니 손을 거치니 입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졌고, 또 뭉개지지 않게 톡, 톡, 한 알씩 떼어주신 옥수수 알갱이는 입에 넣고 씹었을 때 “톡!” 터지는 식감도 잃지 않았다.

문득 할머니와 옥수수에 대한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그날도 어김없이 옥수수를 사오셨다. 사실 그날은 내가 점수가 훅 떨어진 성적표를 손에 쥔 날이었다. 엉망으로 망친 과목은 사회과목이었는데, 나는 도대체 내가 왜 강원도에는 감자와 옥수수가 잘 자라고, 경상북도에는 사과가 잘 자라는지를 외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다 먹었을 때 맛만 있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지역과 제철을 알아야 진정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 이후로도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터덜터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이끌고 온 집에는 할머니와 엄마가 계셨다. 난 성적표를 엄마 손에 던지듯 떨어뜨리고 곧장 할머니 품에 안겼는데 등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게 뭐야? 평균이 8점이나 떨어졌어?” 이제 곧 있으면 엄마의 등짝스매싱(?)이 날라오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좀 떨어지면 어떠냐? 다음에는 올라가겠지. 그만해라.”

‘아, 역시 우리 할머니는 나의 구세주, 나의 천사, 할머니 사랑해요.’ 눈 꼬리가 올라간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속으로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검은 봉다리에서 옥수수를 꺼내어 내게 한 알 한 알 떼어주셨다.

돌아보면 이 외에도 할머니가 나의 구세주, 나의 천사가 된 날은 무수히 많았다.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 숫기 없던 나는 (그땐 그랬다. 낯도 가리고 얌전했다.) 늘 구석에서 조용히 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꼭 내 손에 달콤한 약과를 쥐어주셨다. 첫 직장에서 첫 외근을 나갔다 퇴근하던 날도 그랬다. 잔뜩 긴장했다가 풀어져 녹초가 되어버린 내가 향한 곳은 외근지에서 가깝던 할머니 댁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한 조기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랜 기억 속의 약과와 조기 한 마리는 나에게 할머니의 옥수수와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품이, 할머니의 집이, 할머니의 약과가, 할머니의 옥수수가 나에게 하느님의 품,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빵, 하느님의 사랑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언제든지 폭 안길 수 있는 따뜻함이 있었고, 배고픈 나를 배부르게 만드는 행복의 자리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신실한 신자이시다. 아주 신실한 불교 신자로, 늘 부처님께 내 건강과 안위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래도 나는 하느님이 우리 할머니를 어마무시하게(?) 사랑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할머니의 따뜻하고 끝없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닮았으니까.

“밥 먹었냐?”

“네, 먹었어요.”

……

“밥 먹었냐?”

“네, 먹었다니까요.”

이제는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와 밤 12시가 가까이 되어 퇴근한 손녀가 나누는 대화이다. 밥 먹었느냐는 질문을 열 번쯤 반복하시고 나야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가 주무시는 할머니. 그러다 또 잊어버리고 나와 재차 물으시기도 한다. “밥 먹었냐?”

가끔씩 정신도 못 차릴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이면 밥 먹었냐는 할머니의 질문이 정말 지겹게 느껴진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열 번도 넘게 듣는 같은 질문이니까. 그럴 때 나는 옥수수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이제 다 잊어버리셨지만 내 머리가, 내 마음이 기억하는 그 따뜻한 옥수수를. 그리고 밥 먹었냐는 할머니의 질문을 내 마음대로 바꿔서 듣는다. “옥수수 먹었냐?” 그러고 나면 지겹기만 하던 질문에도 할머니가 떼어주던 옥수수 한 알의, 그 적당한 따뜻함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된다. “네 할머니. 잘 먹고 들어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할머니와 나의 시간을 지겨움이 담긴 “네”가 아닌, 옥수수의 따뜻함이 담긴 “네”로 채워보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가 될 테니까. 내가 할머니에게 갚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 될 테니까.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갈 테니까.


양서희 카타리나

극심한 개인주의 성향을 지녔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후로 ‘연대’를 위한 도전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혼자인 시간은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충족조건이며, 매정한 마음은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자리에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매정하고 냉정한 사람도 예수님의 사랑을 닮으려는 노력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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