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그리고 함께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혼밥’이나 ‘혼술’과 같은 말이 제법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홀로 무엇을 하거나 누리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자발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구조적으로 강요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 한 몸 살아내기도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청년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동반자를 찾아 가정을 꾸리는 일이란 꿈꾸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이처럼 타인이나 가족,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기보다는 홀로 헤쳐가야 하는 노력이 점차 커져가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비추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수도자로 살아가는 저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동체 식구들과 매일 식사를 나누고 함께 미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저 또한 마찬가지로 혼자서 하는 일이 꽤 많은 편입니다. 솔직히 어찌보면 홀로 뭔가 해나가는 것이 더욱 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피정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하느님과의 보다 깊은 만남을 위해 조용히 기도를 하고 산책을 하기 때문에 혼자 머무는 일은 더욱 자연스럽지요.

그런데 이렇게 점점 개인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원들이 부득이하게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관계 맺음’입니다. 메신저나 소셜 네트워크, 블로그 등 온라인 상에서 자유로이 자신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타인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일은 때때로 무척이나 어렵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협력해야 할 때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저마다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됩니다.

문득 지난 6월 종교 간의 대화 및 원주민 체험의 일환으로 방문했던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 산간 마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의 경우 제 할머니께서 아직 살아계셨을 때 시골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낡은 기와집, 겨울철 뜨끈뜨끈 엉덩이가 데일 것 같은 방바닥, 무서웠던 야외 화장실처럼 불편했던 기억들이 먼저 생각나는데, 사실 이번에 다녀온 마을도 우리의 예전 시골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공동으로 함께 길어다 쓰고, 갖가지 농작물을 재배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리는 모습. 마당과 길가 여기저기 닭과 병아리들이 연신 먹이를 찾아 다니며 개나 고양이, 염소 같은 다른 동물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사는 영락없는 시골의 모습이었지요. 심지어 제가 머물렀던 마을 중 한 곳은 휴대폰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외딴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이곳은 여러모로 낙후되고 많은 것들이 부족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었습니다. 모기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의 공격과 종종 단수가 되어 물을 직접 길으러 가야 하는 수고로움, 샤워기가 없어 바가지로 찬물을 끼얹으며 씻어야 하는 환경에서 일주일 이상 지내다 보니 도시생활에 익숙한 저로서는 크고 작은 불편함 때문에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맛있는 식사

며칠이 지나고, 익숙한 수도회 공동체로 돌아와 지난 시간을 잠시 돌이켜보니 마음 한 구석에 잔잔한 여운이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나를 이 시골 마을로 초대하셨을까?’ 마음 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단순함’이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이 사는 일상은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척 단순하고 소박한 풍경입니다. 식탁 위에는 하얀 쌀밥과 나물, 고기 등 반찬 한두 가지가 전부였지요. 하지만 이웃이 방문하기라도 하면 자연스레 어울려 식사를 나눕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함께 나누는 환대의 미덕이지요. 이웃과 한 자리에서 식사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은 요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휴대폰 접속이 안되니 여가 시간에는 동네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습니다. 물이 흥건한 질퍽한 땅을 피해 걷는 동안 제게 특별히 다가온 것은 해맑은 어린이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제 편에서 먼저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하면 활짝 핀, 때론 수줍은 미소로 응답하는 그들이 참 고마웠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도시 사람들에 비해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따스한 기운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며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 바로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자유롭고 편안한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스스로를 자유롭지 않게 얽매이도록 하는가?” 물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고 분투하는 ‘나’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때론 불협화음이 일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 공감하며 소소한 가치들을 나누는 것, 바로 그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요? 오늘 저녁, ‘혼밥’에 너무나 익숙해진 여러분의 식탁에 지금 문득 떠오르는 누군가를 초대해보면 어떨까요?

One Reply to “홀로, 그리고 함께”

  1. 개신교 신학자 본훼퍼는 ‘성도들의 공동생활’이라는 글에서 홀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공동체 생활도 잘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수사님 글처럼 홀로와 함께가 조화로울 때 그 사람은 건강한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이를 반대로 하다보면 수도생활도 의미를 잃게 되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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