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없는 인간이 되었다

6년 만에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이고 뭐 별게 있겠나 싶었는데, 쓸개에 용종이 여러 개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크기가 이미 1cm인데, 용종이 1cm이상이 되면 악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절제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담낭 자체는 워낙 작기 때문에 용종만 뗄 수는 없고, 병원에 4, 5일 정도 입원해서 담낭절제시술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아…… 남은 신학과정을 마치려면 조만간 필리핀으로 떠나야 하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쓸개 빠지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큰 수술은 아니지만 공동체 형제들, 무엇보다 걱정하실 부모님께 죄송해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이런 일이 닥친 것인지 이래저래 마음이 많이 산란해졌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용종이 발견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까맣게 모르고 필리핀에 가서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후에야 발견했더라면, 또는 용종이 더 크게 자랐더라면 어찌될 뻔 했을지. 담낭을 떼었다고 해도 (물론 그리 좋을 것은 없겠지만) 다행히 생활에 지장은 없다고 하니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필리핀에 가는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입원 날짜도 빨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입원을 하고 나서 시술을 받기 전까지 여러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우선 제 평소 생활에 어떤 균형이 깨진 탓에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 부끄럽기도 했고, 수도생활을 한다면서도 그 동안 제 안에 알게 모르게 무던히도 쌓아두었던 독이 몸을 이렇게 만든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이제 할 수 있는 건 기도 드리는 일뿐. 제 안의 화, 약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여러 기억 등을 담낭에 다 모은 뒤에 이제는 좀 내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건강한 쓸개는 아니지만 이 쓸개를 예수님 당신께 바친다고, 기쁘게 받아주시길 기도 드렸습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사람들이 포도주에 쓸개(즙)를 타서 예수님에게 건네는데 그분은 마시려고 하지 않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염치는 없더라도 이번에는 저의 병든 쓸개를 포도주에 타서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제 쓸개로 예수님 당신 목을 축여주십시오. 당신께서 목마르시다면, 조금이나마 제 쓸개로 목을 축이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당신께서 목마르신 곳으로 저를 보내주십시오.’

수술실에 들어가서 누워있으니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전신마취를 하기 위해 제 두 팔을 벌려 고정시키고 발 역시 가지런히 모아서 고정시켰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모습, 딱 십자가 형태가 된 것입니다. 의사의 이어지는 말, “이제 주무세요.” 약이 들어간 뒤, 저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깨어나보니, 쓸개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이나마 목을 축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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