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주세요”, 조선학교에 대한 나의 특별한 관심

얼마 전 재일조선인학교를 돕는 단체인 ‘몽당연필’의 권해효 대표가 TV에 출연해 우리학교(조선학교)를 알린 것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학교와 재일동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예수회 입회 전까지는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이나 민족교육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우연한 계기로 예수회 일본관구 소속의 나카이 준 신부님과 함께 참석했던 몽당연필의 총회로부터 조선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겨울, 저는 시모노세키의 야마구치조선유치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은 우리 말과 우리 민족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특히 제가 머무는 내내 줄곧 졸라댔습니다. “보아주세요.”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을 계속 뽐내면서 제가 잠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라치면 다시 붙잡고 말했습니다. “보아주세요.”

제가 우리학교에 관해 더 알아갈수록 이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우리가 그들과 연대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총련은 여전히 북과 이어져 있으며, 조선학교의 교육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교육과 근본적으로 노선이 다른데 왜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과연 어느 수준의 관계범위까지 “우리”라고 규정하면 좋을까?’ 사실 예수님의 물음 또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너의 이웃인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시간론에서 이야기하듯, 과거도 미래도 모두 현재의 것입니다. 기억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어떤 자료를 다시 재생하는 것이라기보다, 지금 내가 가진 자료들 중 의지를 통해 선별한 특정 대상을 규정하고 해석하는 현재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억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의 행위이며, 이 창조를 통해 새롭게 난 것은 과거의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우리 역사와 동포들에 대한 과거의 무지에 대한 부채의식을 일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더 중요한 연대의 원천은 제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실현되기를 희망하는 평화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러한 원의에 따라 저는 동포들과 소통하고 함께 의지합니다. 후설의 지향성 개념은 분명하게 지향 작용의 창조적 역동을 강조합니다. 동포들, 특별히 아이들이 저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또 무엇을 보고 싶은가?’

다시 그날의 아이를 기억합니다. 그 아이가 제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의 새로운 희망을 보아주세요.”

(남쪽에서 사용하는 국어 문법이나 용례에 익숙지 않은 우리 동포들을 위해 아래 일본어로 번역한 글을 함께 싣습니다.)

「ポアジュセヨ(先生~見て下さい)」朝鮮学校への私の特別な思い

丁洪澈 神学生(韓国イエズス会)

先日、在日朝鮮人学校を支援する団体ーモンダンヨンピル(ちびた鉛筆)のクォン・ヘヒョ代表が、テレビに出演し「ウリハッキョ(朝鮮学校)」を知らせたことをきっかけに、多くの人がウリハッキョと在日同胞に対して関心を持つようになりました。私もやはりイエズス会に入会する前までは、海外で暮している同胞や民族教育について全く知らなかったです。

そんな中、偶然の機会に恵まれ、イエズス会日本管区所属の中井淳神父さんと一緒にモンダンヨンピルの総会に参加する事になり、それをきっかけに私は朝鮮学校を知ることになりました。

今年の冬、私は下関の山口朝鮮幼稚園を訪ねる機会がありました。そこで出会った子供たちはウリマル(朝鮮語)と民族について一生懸命勉強していました。

そんな中、私の滞在しているあいだ中、特にわたしに懐いてくれたある1人の子がいました。

「ポアジュセヨ~(先生、見て下さい)」

そう言って、自分が習ったこと、出来ることを得意げに見せてくれるのです。私が少しでもよそ見をするとまた掴まえて言うのです。「ポアジュセヨ〜(先生、見て下さい)」

ウリハッキョを知れば知るほど、以前は気付かなかった「人の視線」を感じます。

なぜ私たちが彼らと連帯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聞いてくる人がいました。総連は、今も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と繋がっており朝鮮学校の教育は韓国で暮らしている私たちの教育とは根本的に路線が異なっているにも関わらず、なぜ支援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聞いてくる人もいました。

そんな質問をされる度に、わたしは改めて考えてみるのです。

<ウリ(私たち)>とは何なのか。

一体どのレベルの関係範囲までを<ウリ(私たち)>として規定すれば良いのだろうか。

そしてまた、イエスの問いも同じでした。

「だれがあなたの隣人なのか。」

聖アウグスティヌスが自身の時間論の中で論じたように、過去も未来もすべてが現在のことです。記憶は、すでに過ぎ去った過去のある資料を再生すると言うことではなく、今私の持っている資料の中から、意思を通して選別した特定の対象を規定し解釈する現在のことです。

ですから、記憶は、いつも新しいものを作る創造の行為であり、この創造を通し新たに産み出されたものは過去のものとは全く異なっているのです。

私は、私たちの歴史と在日同胞に対しての過去の無知について、少しの負い目(負債意識)を感じます。けれども私にとってもっと重要な連帯の源は、今、私のいるここで実現される平和への渇望です。このような願いから私は同胞たちと繋がり、お互いによりそっていきたいです。 

フッサールの指向性の概念は明らかに指向作用の創造的な力動を強調しています。同胞たち、特に、子どもたちが私に聞いています。

今、何を見ているのか、また、何が見たいのかと。

再び、あの日のあの子が思い出されます。あの子が私に話しています。「ここに、私たちの新しい希望を見て下さい。」

翻訳: 沈終淑 崔泰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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