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여기 있습니다.” (2019년 예수회 서품식)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

제가 예수회에 입회했을 무렵 수련자들은 각자 방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성구를 성화와 함께 붙여 놓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라는 말씀을 택했었고, 이번에 서품성구를 선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도 같은 구절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묵상을 하며 제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구절은 저의 하느님 사랑의 체험이 담긴 말씀(“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이었습니다. 상본 그림 역시 이런 저의 체험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선 어린 양과 그런 양을 사랑과 연민으로 바라보시며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의 모습. 저는 이 그림에서 어린 양의 모습을 한 저와 제게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품을 앞두고 홀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훌륭한 사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이, 소외 받고 외면 받는 이들의 아픔에 함께 하고 사랑을 나누면 충분하다. 너는 이미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사랑 안에서 네 모습 그대로 네가 받은 것을 나누어라.” 매 순간 주님을 향한 열망과 그분의 사랑 안에서 머물면 좋으련만, 지난 수도여정을 돌아보면 저는 자주 그 사랑을 벗어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언제나 처음인 듯,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곁에서 기다려 주셨습니다.

김성현 라파엘, SJ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2코린 4,18)

캄보디아 예수회 미션이 일하는 바탐방 지목구 내 모든 본당에는 ‘모든 이를 품어 안으시는 성모님’이라 이름 붙여진 성모상이 있습니다. 저의 상본 그림은 ‘스테판 델라프레’라는 화가가 이 성모상을 표현한 것으로서, 작가가 성모님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성화 속 모든 아이들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작지만 기쁨 가득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밝은 색감은 경쾌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 줍니다. 캄보디아에서 예수회 양성과정 중 하나인 리전시를 마칠 무렵, 저는 그동안 사람들과 나눈 사랑의 체험을 떠오르게 해주는 이 그림을 저의 서품상본으로 삼고자 미리 마음먹었습니다. 막상 그림을 고를 때가 되자 다른 성화들 앞에서 약간은 망설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 이 작품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지난 기억과 그림이 주는 느낌으로부터 기쁘게 살고자 하는 제 마음을 다시금 읽었고, 제가 받은 하느님 사랑과 은총 또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처럼 앞으로의 사제직 안에서 더욱 기쁘게 살고, 나아가 사랑과 기쁨이 흘러 넘치는 공동체를 세우는 길에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청합니다.

이창준 로사리오, SJ

*지난 7월 3일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에서 한국 예수회원 두 명이 새로이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두 신부님의 상본 그림과 함께 간단한 나눔의 글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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