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앞으로 연재될 몇 편의 글을 통해 인공지능 로봇에 관한 몇 가지 생각과 이해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당장은 ‘인공지능’, ‘로봇’, ‘머신러닝’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우선은 우리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인공지능 로봇을 다룬 최근의 영화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들을 통해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간단히 훑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인간존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다음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1.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필립 K. 딕의 1968년 작품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원작으로 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2019년의 LA를 배경으로 합니다. 1980년대에 바라보았던 21세기는 우주여행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지닌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암울한 미래로 묘사됩니다. 탈주한 리플리컨트(인조인간)를 잡는 블레이드 러너팀은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구분하기 위해 난해한 질문들로 구성된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사용하는데, 이는 리플리컨트가 인간과 동일한 사고력을 지녔지만 수명이 짧은 탓에 감정이입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용한 테스트입니다. 영화 속에서 감정 혹은 공감은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구분하는 결정적 열쇠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영화는 리플리컨트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보여주며 인간과 리플리컨트 간의 경계가 무엇인지, 도대체 누가 더 인간적인지, 근본적으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2.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1999년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에 등장하는 로봇 집사 앤드류는 호기심이 많은데다 창작과 음악 감상까지 하는 다재다능한 로봇입니다. 이는 앤드류의 신경계가 달라져서 생긴 지능 덕분인데, 영화는 엔지니어가 로봇 회로 위에 실수로 떨어뜨린 마요네즈 한 방울 때문에 지능이 생겼다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앤드류를 통해서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3. A.I.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영화 〈A.I.〉의 배경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많은 도시가 침몰되고 자원의 부족이 발생한 미래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로봇에는 처음부터 지능과 감정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은 로봇으로 해소되고, 이에 따라 로봇은 점점 많은 기능을 지니게 되어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기계로만 취급될 뿐입니다. 영화의 시작부에서, 불치병에 걸려 냉동인간인 된 자녀를 둔 남자는 깊은 슬픔에 빠진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로봇 소년 데이비드를 입양합니다. 하지만 얼마 후 아들의 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자 인간 아들과 로봇 아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로봇 아들 데이비드는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A.I.〉는 인간이 되기를 갈구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감정을 지닌 로봇의 이야기를 그리는 가운데 앞선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존재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4. 아이, 로봇 (I, Robot)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2004년 영화 〈아이, 로봇(I, Robot)〉에서 인간들은 2035년의 지구에서 지능을 갖춘 상용화된 로봇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 로봇에는 ‘로봇 3원칙’*이 내장되어 있으며, 인간에게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고 신뢰받는 동반자로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봇 옴닉의 창시자인 USR사의 래닝 박사가 살해를 당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 써니가 용의자로 지목되며 영화가 전개됩니다. 다른 옴닉들과 달리 써니는 스스로 누구인지 묻기도 하고, 인간의 소통 방식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영화에서는 신형 옴닉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는 USR의 총괄 인공지능 옴닉인 비키의 결정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 비키가 든 이유였습니다. “무엇이 인간에게 해가 되는가?” 〈아이, 로봇〉은 로봇 3원칙 중에서 제1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5. 그녀 (Her)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13년 영화 〈그녀(Her)〉는 인간과 로봇의 교감이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아내와 별거 중인 대필 작가 테오도르는 우연한 계기로 소프트웨어 사만다를 구입하게 되는데, ‘자신에게 귀 기울여 주고,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고 알아주는’ 그녀에게 반해 진짜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로봇에게 위로를 받는 모습이 정말로 인간의 미래가 될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사랑이란 감정을 통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 <그녀 (Her)>

6. 트랜센던스 (Transcendence)

윌리 피스터 감독의 2014년 영화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는 한 과학자의 광기를 다룹니다. 천재 과학자 윌은 인류의 지적능력을 초월한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를 개발하던 중에 이를 반대하는 단체에 의해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윌의 뇌를 슈퍼컴퓨터에 업로드 하고, 이후 그는 온라인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통제합니다.

7. 엑스 마키나(Ex Machina)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2015년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사내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주인공 칼렙은 회사 CEO와 함께 며칠 동안 여성 로봇 에이바를 상대로 튜링 테스트를 하게 됩니다. 에이바는 프로그램 된 지식과 의식에만 머물지 않고 칼렙과 대화를 나누며 얻은 지식으로 오히려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입니다.

8. 채피(Chappie)

닐 블롬캠프 감독의 2015년 영화 〈채피(Chappie)〉에 등장하는 로봇 경찰 스카우트 22호는 고도의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원래 채피는 세상에 대해서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이해하도록 만들어졌지만 경험을 통해 점차 지식을 쌓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컴퓨터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으며,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서는 데이터의 처리뿐만 아니라 예측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머신러닝은 우리 일상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구글번역, 지메일 스팸진단 서비스, 이메일 자동답장 시스템(Smart Reply), 음성번역 등에 적용된 기술로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아직까지 실제과학이라기보다는 공상과학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감정적 소통을 한다거나 인간의 뇌에서 추출된 의식이 컴퓨터 칩에 복사되어 로봇에 주입된다는 영화적 상상이 그러한 예입니다. 물론 모든 영화적 상상들이 현실의 기술수준이나 방향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과학자 스튜어트 러셀은 영화 〈채피〉의 로봇 경찰 스카우트 22호가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장면에 대해, 비록 머신러닝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현재의 기술방향과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인간과 닮은 로봇이라 해도 특정상황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을 인공지능이라 부를 수 있을까?”, “로봇이 사람처럼 정보를 모아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스스로 학습하고 축적한 경험을 디지털 자손에게 전할 수 있을까?” 다음 회부터는 소프트웨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과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고민했던, ‘인간보다 더 인간 같고,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로봇의 분야 별 이슈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연재글 읽기] 2편: “모라벡의 역설”

*로봇 3원칙: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자신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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