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왜 하나요?

어느 수도회든 처음 입회를 하면 얼마간 ‘수련기’라고 부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저 역시 예수회에 입회하고 나서 첫 2년을 수련원에서 보냈습니다. 수련기를 외적으로만 보면 단순하고 반복되는 생활을 해나가는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삶의 여정에 늘 함께 하셨던 하느님을 만나려 노력하고, 특히 자신의 상처와 약함을 마주하게 되면서부터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수련기의 여러 단면들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앞으로의 수도여정을 위해서 필요한 체험인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수련자였을 동안에는 이 내적 여정을 보다 잘 해나가기 위해 모든 수련자들은 적어도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수련장 신부님과 개별적으로 면담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이 시간이 늘 쉽지 않았습니다. 수련장 신부님과 조그맣고 낡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면담은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모자라 마치 있는 살림 없는 살림을 다 긁어서라도 손님에게 뭔가 더 대접해야 직성이 풀리고 마는 철없고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저의 불편함을 더욱 가중시켰던 것은 면담 때마다 으레 같이 하던 고해성사였습니다. 사실 저는 입회 전에도 고해성사를 그리 자주 보던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고 성당에 꾸준히 다니기는 했지만 고해성사의 의미나 은총에 관해서 깊이 성찰해보거나 그 맛을 보게 되는 체험은 딱히 없었습니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련장 신부님이 매번 고해성사를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수련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환경에서 따로 죄를 고백할만한 사제가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신부님은 수련자들이 자주 고해성사를 보도록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피해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고해는 그 내용이 어떠했을지는 몰라도 이면에 깔려있는 마음 안에는 늘 불편함과 어색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수련원에는 매년 연말이 되면 찾아오시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멕시코 예수회원인데 예수회의 초기 역사와 영성에 매우 해박하고 로마에서 오랜 시간 영성신학을 가르쳐온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수련장 신부님과 가까워 졌고, 그때부터 매년 당신의 소중한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을 할애하여 머나먼 나라 한국의 수련자들에게 예수회 영성을 가르치는 봉사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오전과 오후, 때로는 저녁시간까지도 이어지는 빡빡한 수업일정 속에서 물밀듯이 밀려드는 강의 양에 허덕이면서도 먼 길을 마다 않고 봉사하러 온 신부님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힘을 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예정된 수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신부님이 로마로 돌아가기 며칠 전 어느 날 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저는 신부님에게 조용히 찾아가서 면담을 청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저는 그날 고해성사와 관련하여 수련기간 내내 품고 있던 제 오랜 불편함을 털어놓았습니다.

“신부님, 부끄럽지만 실은 제가 고해성사의 은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마치자 그전까지 저를 인자로이 바라보던 신부님의 눈길이 일순간 다소 일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또 수련자로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멋쩍기도 하여 무슨 커다란 잘못이라도 한 것마냥 신부님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늘 바라보던 낡은 탁자에만 시선을 두고 있으려니 일순간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실제로는 아주 짧았을 정적을 깨는 신부님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무엇이든 ‘왜’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요.”

만 스물 다섯의 나이에 입회한 수도회 삶은 제게 온통 ‘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인 생활이었습니다. 바깥에서는 몸에 채 배지 않았던 기도생활부터 시작하여 영적 여정을 해나가는 방법, 미사전례를 준비하는 법, 물을 덜 쓰며 설거지하는 법, 심지어는 친환경 비누를 만드는 법까지 모든 것을 새로 배우고 익혀나가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매일 밤 침묵 가운데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떠올리면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하는 것들’을 잘 실천하겠다는 목적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노력의 원동력이 상당부분 수동적 의무감에서 기인하고 있었음을, 저는 신부님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는 수련장 신부님과의 면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련자로서 장상에게 최대한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야 한다고 배웠고, 좋은 수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힘쓰며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 진정 이것이 왜 필요한지, 면담을 마치면 왜 이상하게 늘 개운치 못한 느낌이 남는지에 관해서는 충분히 성찰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저의 신앙여정은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적어도 성당에서만큼은 항상 착한 아이였으며, 해야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는 일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늘 비슷한 양상이었는데, 솔직히 제 편에서 스스로 문제 삼거나 부끄러울 만한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나름의 희생이 따랐기 때문에 내심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그건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만일 그래도 고해성사가 어렵게 여겨진다면 죄를 고백하는 일은 적어도 수사님이 ‘좀 더 겸손해 지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신부님의 무심한 듯 애정 어린 충고를 들으며 저는 체중이 깊게 실린 라이트와 레프트 훅 두 방을 연거푸 얻어 맞는 상상을 했습니다. 물론 저의 노력을 두고 스스로 거짓 겸손이라고 비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겸손함에 대한 지적 역시 저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로마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수련원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신부님 또한 이제 더는 한국을 방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신부님과 나눈 대화는 지금까지도 감사한 기억으로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언젠가 교리반 학생들에게 고해성사에 관해 알려주던 날 이런 저의 체험을 나누어 주었는데 말주변이 부족한 탓에 어떻게 이해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약의 바오로 서간들을 읽다 보면 율법에 관해 다소 상반되어 보이는 언급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율법이 죄와 연관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른 쪽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성을 갖는 듯 보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성경해석이야 늘 쉽지 않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도 결국 현상 이면에 자리한 보다 근본적인 행위의 기준과 원의, 곧 ‘왜 하는가?’라는 반성적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지금 ‘작년에도 왔었는데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 판공성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으신가요? 율법을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계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인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우리의 용기가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잔잔한 위로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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