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일기] 기쁨을 가져다 주는 마주침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몹시 드물다.

스피노자 <에티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화곡역에 내렸다. 늘 이용하던 4번 출구가 승강기 공사로 막혀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5번 출구로 나와서 번거롭게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들른 합동 분향소의 참배로 늦은 시간에 귀가하고 있던 중이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건널목 한쪽 귀퉁이에서 만두를 파는 푸드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분향소를 다녀오는 길에 슬퍼하던 유가족들 때문에 도저히 저녁 먹을 염치가 없어서 그대로 거르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나는 파란불이 켜졌는데 건너가지 않고 염치불구하고 몸이 이끄는 대로 푸드트럭 앞에 놓여 있는 간이 의자에 슬며시 앉았다.

푸드트럭 한쪽 켠에는 교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단발머리의 여고생 한 명이 연신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주인장으로 보이는 50대 남자는 나의 주문을 기다리느라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만두 한 접시를 시켜놓고 나서야 내 앞에 앉아 있는 여고생이 이 푸드트럭 주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이 나라는, 왜 이리 힘들어?”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는 먹음직스런 만두 한 개를 집어 들다가 줄곧 생각 없이 문자 보내는 일에만 열중하는 줄 알았던 이 푸드트럭 주인의 딸 이야기에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아빠는 대답 없이 하루 장사의 실패를 증명하듯 수북이 쌓여 있는 만두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딴청 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유일한 관객으로 착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김치만두 한 접시를 더 시켰다. 늘 다니던 길에 눈에 띄는 푸드트럭이 새롭게 들어 선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장사는 여기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딸은 교복을 입은 채로 장사를 마무리하는 아빠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았다.

아빠는 별로 말이 없는 수줍은 가장으로 보였다. 딸이 여러 차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하였어도 그는 그저 입가에 미소만을 띨 뿐이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다시 자신이 줄곧 대화하는 휴대전화 속 세계로 귀환하면서 어른 같은 푸념을 털어 놓았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전쟁처럼 살아내야지만 얻을 수 있는 나라야…… 이 나라는…….” 아빠는 딸아이의 푸념치고는 폐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이 10대 소녀의 통찰에는 아랑곳 않는 듯이 갓 쪄낸 물기가 자르르 흐르는 만두 한 접시를 아이 앞에 내려놓았다. “먹어야 전쟁한다.” “치이, 살쪄…….” 아이는 뾰로통하면서도 나무젓가락을 집어 이미 만두 한 개를 입에 넣은 상태였다.

나는 값을 치르고 건널목을 건너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무려 4대나 그냥 보내며 건너편에서 아빠와 딸이 어떻게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계절은 이미 봄날이어서 가로수의 푸른 녹음이 가로등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그 녹음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사회가 10대들에게 평범하게 사는 일상의 삶이 곧 전쟁을 치르듯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로 비춰지는 시류의 징표를 그야말로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이 잔인한 시류의 징표 앞에서 수도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상의 피로로 지쳐서 딸아이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서 아빠의 심정이 너무나 가슴에 사무쳤다. 수도자로 살면 일상이 안전하다면, 그것을 평화라고 부르고 있었다면 나는 적어도 10대들이 적대시하는 어른들의 무사안일과 무책임이라는 일군의 부조리한 사회 주체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겠다는 자책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꿈꾼 수도자의 삶은, 입회 직전 수련원으로 향하고 있던 차 안으로 죽마고우인 친구가 걸어온 전화통화 내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나의 10대를 함께 해 온 가장 친한 친구이기에 전화 수화기 저 너머로 글썽이고 있었다. 벗의 새로운 삶으로의 진군이 불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라는 판단이었고 그렇게 그 길을 선택해 가는 용기가 벗으로서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의 공기가 너로 인해서, 그리고 네가 앞으로 수도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삶을 통해서, 조금만 더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로 변해가도록 노력해다오. 친구야.”

나는 하루 장사를 마치고 푸드트럭을 정리하는 아빠와 딸을 건널목 건너편에서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합동 분향소에서도 흘리지 않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책없는 눈물이었지만 이미 거리는 어두웠으므로 나도 나를 내버려 두었다. 이미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는 끊겼고 나는 집까지 걸어서 갔다. 그리고 걸으면서, 그 옛날 나의 벗이 나에게 해 주었던 내 수도 삶의 화두와 같은 그 ‘청명한 공기를 만드는 삶’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친구에게 꼭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미안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이 세상 평범한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다시금 청명한 공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멀리서 아빠와 딸이 탄 푸드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이 글은 예수회 후원회 소식지 <이냐시오의 벗들> 2014년 6월호에 실렸던 ‘수도자 일기’를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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