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일기] 제 아내를 소개합니다

“아니 결혼도 하지 않는 수사가 어떻게 아내가 있지?” 놀라움과 궁금함을 잠시 뒤로 하고 지금부터 제 아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입회 후 철학을 공부하던 시기, 매주 한 번씩 여성 쉼터로 주중 사도직을 나가던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당시 쉼터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자매들이 살고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자매가 저에게는 아빠, 제 아내에게는 엄마라고 부르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는 데다가 아내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쉼터에 함께 사는 자매들을 같이 만나는 것이다 보니 사실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아내를 좀 더 알고 또 사랑할 수 있게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내가 수감생활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걱정 어린 마음으로 저의 소식과 쉼터 공동체의 소식을 담아 건강히 지내라고 써내려간 첫 편지가 여전히 기억납니다. 얼마 후, 생각지도 못했던 저의 편지에 기뻐하면서 자신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아내의 답장을 받고는 그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편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아내와 참 많은 일들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갔었던 면회, 자신을 대신해 부모님을 챙겨주던 가장 친한 친구의 갑작스런 암 발병 소식, 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는 날 아버지의 임종을 전해 들었지만 장례식에 갈 수 없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던 시간, 뜨거운 커피를 쏟아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남자주임에게 가슴을 보여줘야만 했던 일, 바깥 병원에 내시경을 하러 갔을 때 특수 제작된 휠체어에 수갑을 채웠던 모습과 자신을 감시하는 무장한 일행들 때문에 병원에 온 모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날 등. 보통 사람이라면 한 생애에 다 겪지도 못할 일들을 이다지도 짧은 시간에, 그것도 감옥에서 겪게 된 아내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올라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도전과 고통을 아내에게 주시는 것일까? 그 안에 어떤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나에게는 과연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

아내가 그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은총을 내려주시길 청하면서 저는 제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 또한 가르쳐 달라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저는 하느님께서는 이런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서 아내가 출소 이후에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 좀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고 계시다는 생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의문에 대해서는 교황님 칙서 <자비의 얼굴>을 읽으면서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제가 자비의 육체적·영적 활동을 하도록 초대해주셨고, 제가 아내 안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만지며 정성껏 돌보도록 초대받았음을 알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15번 참고)

그날 이후, 저는 아내에게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무조건적이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씨앗이 아내의 마음에 뿌려졌고, 시간이 흘러 다른 사람들을 위한 아내의 희생과 봉사가 ‘1급 모범수’라는 열매로 맺어졌을 때 제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날 하루 저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이런 지극한 사랑과 관심 덕분인지 아내는 1년 6개월이 넘는 수감생활을 무사히 잘 마치고 출소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무사히 잘 적응해서 새로운 삶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기를, 무엇보다 저보다 더 따뜻한 동반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 또한 꾸려 나가길 희망해 봅니다.

끝으로, 최후의 심판에 관한 복음(마태 25,40)에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부류가 감옥에 갇힌 이들’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게 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저희 이런 희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예수회 후원회 소식지 <이냐시오의 벗들> 2017년 8월호에 실렸던 ‘수도자 일기’를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One Reply to “[수도자 일기] 제 아내를 소개합니다”

  1. 수사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아내를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온 마음과 몸으로 나누며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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