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희망

며칠 새 한낮의 기온이 많이 올라간 덕분에 피부에 닿는 바람이 한결 따스해졌다. 겨우내 나를 지켜준 두툼한 점퍼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제 정말로 봄이 오는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문득 지난 봄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년 봄, 개강의 설렘이 살짝 가라앉을 무렵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면 내가 가끔씩 하던 일이 있었다. 사실 나의 의지라기 보다는 ‘타의’에서 비롯된 일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부터 약간은 어눌하고 독특한 말투가 들려온다.

“윤호~ 다음 주에 나무 심으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

그러면 나는 잠시 머뭇머뭇 바쁜 기색을 내비치며 별 일 없는 다음 주 일정을 상기해본다.

“음……괜찮을 것 같네요, 네 좋아요 신부님.”

신부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에 오셔서 오랜 시간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봉사하셨고 이제는 우리 수도회의 가장 큰 어른이시다. 신부님에 비한다면 나는 저 아래 까마득하니 보이지도 않는 손주뻘 되는 막둥이라고 할 수 있다. 신부님은 내 수련시절부터 우리 수련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셨는데 나는 최근까지도 신부님과 매주 한 번 만나서 영어 수업을 빙자한 수다를 떤다.

신부님은 소소한 취미생활을 몇 가지 가지고 계신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소일거리 중 하나는 바로 서강대학교의 뒷산인 노고산에 나무를 심는 일이다. 한 번은 함께 노고산 길을 걷던 중 길 가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이거, 내가 30년 전에 심었어.”

나는 하늘 높이 솟은 나뭇가지의 끝을 올려다보며 30년 전에 과연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아무런 기억도 떠올릴 수 없었다. 사실 나로서는 그 시절을 기억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오래된 신부님의 나무심기에는 대대로 곁에서 돕는 학교 제자들, 혹은 수사들이 있어왔다. 그러니 신부님의 전화는 곧 내가 새로운 도우미로 발탁(?)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작년 봄 나는 수업을 전후로 몇 차례 삽과 물통을 들고 신부님을 따라 노고산을 올랐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보통 풀을 옮겨 심는 일이었다. 오래 전 다른 곳에서 옮겨다 심었다는 풀들은 25년이 지난 지금 꽤 넓게 퍼져나가 자그마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새로운 계획은 그 풀 포기들 중 일부를 다시금 다른 장소로 옮기려는 것이었다. 신부님의 시범을 따라 여린 뿌리 주변을 조심스레 파내고 있자면 실로 오랜만에 손에 닿는 흙의 촉감이 부드러워 좋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내 장갑을 벗어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맨손으로 일하곤 했다.

그런데 신부님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의 강도가 날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쳐야 하는 수량은 언제나 똑같이 100포기라는 점이다. 신부님께서는 결코 무리하는 법이 없으셨고 쉬는 시간을 철저히 지켰으며 따라서 나에게도 늘 정해진 만큼의 일을 주셨다. 그래서 서툰 작업이 손에 익고 막상 일을 좀 해보려고 하면 남은 일이 없어 다소 싱겁게 마무리를 해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아쉬운 기색을 내보이면 신부님은 특유의 무심한 듯 시크한 말투로 늘 다음을 기약하셨다.

“오늘은 그만 하고, 다음에 또 도와주면 좋겠어.”

그러면 얼마 후 정말로 또 연락이 왔다. 신부님은 작은 말이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몇 년을 알고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갖게 된 신뢰(?)랄까. 아마 난 다음 번에도 필시 100포기를 할당받을 터이다.

일을 마치고, 낙엽 사이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풀잎을 바라본다. 애초에 이름 모를 풀이 너무 소박해서 그런 것일까? 기껏 심어놓은 풀들은 누군가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렇지만 또 다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자리도 그늘 속 자그마한 풀밭을 이루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그때 가서도 신부님과 내가 그랬듯이 이 작은 풀 포기들을 다른 곳에 옮겨 놓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세월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장소를 묵묵히 가꾸어 오신 신부님의 머릿속 그림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내 편에서 단 한 번도 여쭈어본 일은 없다. 그냥 늘 해오던 대로 해나갈 뿐이라는 식의, 시크한 답이 돌아올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매번 한사코 무리하지 않는 신부님의 오랜 나무심기는 마치 이제 막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과도 같다. 다소 더디긴 하지만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 안에는 미래를 향한 오랜 희망이 담겨있다. 그러니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날갯짓을 다 쏟아내려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모습만으로도 잔잔한 여운을 가져다 준다. 신부님은 이제 수십 년간 머물렀던 학교 공동체를 떠나 다른 공동체에서 살고 계신다. 연로해지신 탓에 전처럼 무리해서 일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여러모로 행동반경 또한 좁아지신 모습이다. 당장 오늘이나 내일의 일은 아니겠지만 신부님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허나 만일 그런 날이 오게 된다 하더라도 매년 봄 같은 자리에 푸른 싹을 틔울 이름 모를 풀을 통해서 신부님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도, 내가 배운 것들도. 신부님과 함께한 봄날의 추억과 희망을 언제까지나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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