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일기] Salamat Sa Diyos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를 필리핀으로 2년간 파견하심으로써 필리핀의 예수회원과 비예수회원 사이, 농인과 청인 사이, 그리고 빈자와 부자 사이 등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두루두루 살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이 나라에서 양극단을 수시로 오가야 하는 새내기 선교사의 삶은 간혹 고달프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당신께서는 친히 그 양극에 걸쳐진 다리가 되시어 제가 감히 당신의 등을 밟고 오갈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당신께서는 ‘매정하게’ 파견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상하게’ 다리와 이정표 역할까지 해주시는 분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필리핀에서의 사도직 수행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 예수회원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들의 영어 입 모양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데서 오는 당혹감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 당혹감으로 말미암아, 제가 할 수 있는 더 나은 소통 방법을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특성에 맞추어 저 또한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그들과의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초반에 서로가 느꼈던 관계의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에서 오는 긴장을 점차 유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와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필리핀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형제간의 우정 또한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종종 전기와 물이 끊기는데다가, 인터넷도 잘 안 되며, 매일 생선만 먹고 지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인 칼바욕의 한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번은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겨우 인터넷에 접속해 비빔밥 사진을 보며 한국을 간절히 그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뒷모습을 옹기종기 모여 훔쳐보던 필리핀 학생들이 자신의 방에 숨겨두었을 법한, 각자가 갖고 있던 식재료들을 하나씩 들고 와 바로 손질하더니 ‘양푼비빔밥’을 만들어 저에게 대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칼바욕에서 체험한 ‘오병이어의 기적’에 감사드립니다. 전주비빔밥 부럽지 않았던 그 양푼비빔밥에는 학생들의 사랑으로 손질된 맛이 넉넉히 담겨 있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국 수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필리핀 수화를 처음부터 새로 익혀야 하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회 공동체에서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사도직 공동체에서는 필리핀 수화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칼바욕 농학교에서 제가 가르쳤던 필리핀 농아학생들 모두가 저에게 훌륭한 수화 선생님이 되어주곤 하였습니다. 자신의 과제 및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저를 위해 흔쾌히 시간을 쪼개가며 수화를 가르쳐주었던 우리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렸을 적 청각장애가 있는 저를 위해 발성법을 가르쳐 주려고 밤낮으로 매달렸던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또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은 저에게 예나 지금이나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하고 나지막이 일러주십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칼바욕에서 만난 한 일본 농인 학생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습니다. 스물을 갓 넘긴 그 학생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더니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군요!’라는 말과 함께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예수회원으로 살면서 하느님 당신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미약한 저를 통해 하느님 당신의 권능과 사랑이 드러나는 것만큼 가슴을 벅차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필리핀에서 활동하신 분은 제가 아니라 하느님 당신이었습니다. 저를 친히 하느님 당신의 도구로 삼아 필리핀에서 2년간 함께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이 글은 예수회 후원회 소식지 <이냐시오의 벗들> 2018년 10월호에 실렸던 ‘수도자 일기’를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2 Replies to “[수도자 일기] Salamat Sa Diyos (하느님 감사합니다)”

  1. 삶에 깃든 행복한 순간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군요!”

  2. 하느님 당신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나누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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