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일기] 아, 급행이 더 느릴 수도 있구나

어느 날 아침,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출근 시간대라 승강장은 사람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좀 기다리니 일반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열차 안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적어 아주 한적했지만, 더 빨리 갈 수 있는 급행을 타기 위해서 그 일반열차를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렇게 좀 더 기다리다가 급행열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급행열차 안은 무척이나 붐볐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아꼈다는 생각에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려야 할 역에 거의 다 다다랐을 무렵, 급행열차가 제가 내리고자 하는 역은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정거장을 더 지나쳐 열차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반대쪽 승강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반갑게도 마침 열차가 승강장에 막 들어오고 있었고,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서 그 열차를 간신히 탔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지체 없이 열차를 다시 타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숨을 진정시키고 살펴보니, 제가 탄 열차는 이번에도 일반이 아니라 급행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또 급행이었습니다. 급행인줄도 모르고 급한 마음에 그냥 탄 것이지요. 결국은 내려야 할 역을 또다시 지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시 반대쪽 승강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마침 또 열차가 바로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타기 전에 눈 여겨 확인을 했습니다. 또 급행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히 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좀 더 기다렸다가 그 뒤에 오는 일반열차를 타고서 제가 그토록 내리고자 했던 역에 비로소 내릴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래도 그날 진료시간에 늦지는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제 어이없는 실수를 계속해서 곱씹으며 자책했습니다. 한참을 그러다가 내리게 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아, 급행이 일반보다 훨씬 더 느릴 수도 있구나.”

그러면서 다시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분주한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분주하게 살고 있는가? 정작 주님은 안중에도 없이, 혼자 급한 마음에 우왕좌왕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물며 실은 그다지 바쁠 것도 없으면서 게으름과 교만과 일종의 도피책으로 분주한 척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분주한 것이 결코 빠른 것도 아니고, 또 빠른 것이 결코 옳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분주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오직 그분의 사랑을 이웃에 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고, 또 쉬어가야 한다면 이 역시 그 사랑을 위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고 계실까요? 유난히 여유 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그냥 잠시 멈춰봅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서 온갖 잡념도 모두 흘려 보냅니다. 좀이 쑤시면 쑤시는 대로, 분심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어 봅니다. 그렇게, 그렇게 좀 더 조용히 있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제게 사랑으로 무엇인가 속삭이고 계신 주님께 진정으로 귀 기울일 수 있게 말입니다.

(이 글은 예수회 후원회 소식지 <이냐시오의 벗들> 2017년 9월호에 실렸던 ‘수도자 일기’를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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