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 어제와 똑같은 반복처럼 여겨지는 오늘 하루의 의미에 대하여

지난 1993년에 개봉한 <사랑의 블랙홀>(원제: Groundhog Day)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필(빌 머레이 분)은 자신의 일에 매우 냉소적인 태도를 지닌 방송국 기상캐스터입니다. 그는 어느 날 성촉절* 취재를 나갔다가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다시금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마법 같은 일을 겪게 됩니다. 영화는 이 하루에 갇히게 된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변화를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여줍니다. 단조롭고 지루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어느 하루’가 매일 매일 반복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것 같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실상 우리의 모습과 매우 비슷합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매일같이 비슷해 보이는 하루를 되풀이하면서 입시준비를 하고, 혹은 직장에 출근해서 어제와 비슷한 업무에 몰두하기를 요구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아주 다른 컬러풀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기보다는 어제와 아주 비슷한 일들이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되풀이 된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습니다.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내일도, 그리고 어쩌면 모레도 오늘과 비슷한 무의미한 하루를 되풀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함입니다.

영화 속 필 또한 반복되는 무의미한 나날들 가운데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느 노숙인 할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지만 이미 건강을 회복하기에는 늦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필은 그 순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오늘’이 자신에게는 끔찍하게 되풀이 되는 하루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노숙인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는 필

그날 이후 필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루를 보내지 않고 그 대신 매일 조금씩 피아노를 연습하고, 얼음조각을 배우고, 마을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시간에 나타나 그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비로소 필은 반복되는 하루를 그저 허비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루라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의 의미를 찾아가는 가운데 리타(앤디 맥도웰 분)와의 사랑 또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는 영화 속 메시지를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동의합니다. 어쩌면 반복이란 숙달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며, 오늘 하루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오늘 하루가 어제와 똑같고 지겹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오늘 하루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나라 절기 가운데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는 성촉절(Groundhog Day)이 있다. 성촉절은 매년 2월 2일이며, 이날에는 ‘Groundhog’라는 설치류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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