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Silence, 2016) – Sinner, yet called

우리에게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문인 엔도 슈사쿠의 동명소설 <침묵>으로 더 익숙한 작품.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가 처음 소설을 읽고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후 30여년이 걸려서야 완성된 작품이기도 하다. 제작과정 자체가 마치 하나의 순례였던 것처럼 영화는 박해라는 잔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지상의 순례여정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극중 인물은 ‘기치지로’이다. 그는 예수회 선교사들을 일본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지만 실은 과거에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저버린 자였으며, 나중에는 사제를 밀고하기까지 하는 등 박해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밀고한 사제를 끊임없이 찾아와 고해성사를 청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슷한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면서도 뻔뻔하게 용서를 희망하는 그의 비겁함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는데 그 모습이 바로 나 자신과 닮았기 때문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러니 기치지로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 매번 믿음을 부정하고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들, 하느님의 용서를 엎드려 청하며 죄를 고백하는 그를 어찌 단죄할 수 있을까? 나야말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예수님의 얼굴을 밟고 돌아서서 ‘왜 제게는 다른 이들과 같은 충분한 강함을 주지 않으셨습니까?’하며 하소연하기에.

그래서 ‘약한자가 강한자보다 더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작품의 통찰은 죄의 경향성으로 신음하는 우리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속삭여준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로마 5,20ㄴ)”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그저 죄로만 받아들였다면 구원을 향한 희망은 애초에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사부 이냐시오와 같이 예수의 벗으로 불림 받은 이들 (제32차총회 교령2)”이라는 예수회원의 신원이 새삼 떠오른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