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로부터 배우는 삶

저는 올해 6월 30일에 서품을 받은 새 사제로서 지난 9월 초순 무렵 처음으로 병자성사를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대상은 저보다 나이가 한 살 많으시고 사도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가지신 형제님이셨습니다. 형제님께서는 2020년 말 복막암 4기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 중이신 상황이었고, 제가 형제님의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병자성사를 드리기로 한 날은 이미 형제님의 임종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도 요한 형제님께 병자성사를 드린 이튿날, 형제님께서 하느님의 품으로 불려가셨다는 소식을 형제님의 어머님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아프시기 전의 사도 요한 형제님은 누구보다 유능하고 유명했던 뮤직비디오 감독이셨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어머니이신 아녜스 자매님께서도 깊은 신앙심을 가지시고 교회와 당신의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봉사를 해오신 분이셨고요. 너무나도 이른 사도 요한 형제님의 죽음과 자녀의 죽음을 비통한 심정으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녜스 어머님을 마주하며 제 마음에는 하느님께 대한 원망이 올라왔습니다. ‘하느님 도대체 뭐하고 계십니까? 어디에 계신 겁니까?’ 그렇게 하느님께 대들고 싶은 마음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올해로 제가 수도회에 입회한 지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 동안의 수도 생활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제가 만나 뵈었던 분들 중 일부는 이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저에게 털어 놓으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픈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분들께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이분께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겨우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 밖에 없구나.’ 이런 마음들이 저를 사로잡을 때면 수도자로서 많은 좌절과 도전을 겪기도 했습니다. 혹시 그 기도하겠다는 말조차, ‘나는 당신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아서 온전히 당신의 상황을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떻든 나도 기도는 해 보겠소.’라는 느낌으로 상대에게 들릴까 싶어 기도드리겠다는 말도 건네지 못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삶의 힘듦과 고통 속에 있는 분을 내가 어찌 감히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는 이 영혼을 왜 그냥 저렇게 고통받는 상태로 두실까?’ 제 마음속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원망과 불만이 적잖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마치 풍랑 속 배 안에서 태연하게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향해 제자들이 아우성치듯 말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마르 4,38ㄴ

그런데요, 제가 그간 만나 뵌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께서는 많은 경우 장이 끊기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삶에 대한 희망을 이어 나가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녜스 어머님도 그러한 분들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그래도 당신께는 하느님 외에는 의탁할 분이 없다며, 또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며 사도 요한 형제님께서 투병하시던 때에 매일같이 기도하시고 또 주변 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 형제님께서 하느님 품으로 가신 이후에도 아드님을 이제 돌봐주실 분은 하느님뿐이시라며 더 열심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하셨습니다.

사도 요한 형제님 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형제님과 함께했던 병자성사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형제님께 노자성체를 드렸을 때 형제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온전히 영하시려고 긴 시간 동안 성체를 입에 모시고 조금씩 조금씩 넘기시려고 애쓰시던 모습과, 형제님께서 성체를 무사히 영하실 수 있도록 곁에서 형제님께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도와주시고 기다려 주신 형제님의 아버지, 어머니, 형님, 여동생의 모습 말입니다. 제가 원망했던 하느님이 이분들께는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도대체 하느님 당신은 어디 계시고 뭘 하시느냐고 철부지같이 대들었던 제게, 이 가족은 바로 지금 여기에 하느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셨던 것이었지요.

이처럼 아녜스 어머님 같은 신자분들께서 담대히 보여주신 모습에 저 또한 저의 들썩였던 마음을 추스르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그저 어려움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가 바라보고 의탁해야 할 분은 바로 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어디에서 발견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하느님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두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로마 8,24

이 시기 특별히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와 은총을 간절히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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