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제2의 나다

저는 현재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서 두 해 가까이 ‘선교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살아오면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주변 사람을 상대로 제대로 전교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물론 자랑이랍시고 하는 말은 아니고, 이에 대한 부끄러움은 늘 마음 한구석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편의점보다 교회가 더 많다는 그리스도교 천국을 떠나 동네마다 절이 몇 개씩 있는 불교의 나라에 와서 선교사라며 지내고 있으니, 제가 생각해도 가끔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무렵만 해도 저는 사람들을 개종시켜 세례를 받게 하면 그게 곧 선교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삶이 팍팍한 캄보디아인 신자 대다수가 소위 ‘밀가루 신자’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에서 얻을 것이 없으면 쉬이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즉, 현재의 이익 때문에 외국 종교에 귀의하더라도 언제고 다시 삶에 깊이 뿌리박힌 자신의 토착 신앙으로 돌아갈지 모릅니다. 강가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물을 뿌려가며 몇천 명씩 세례를 주었다는 위대한 성인들의 이야기를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6개월의 예비자 교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적어도 3년의 준비를 요구하는 캄보디아에서의 선교는 참으로 호흡이 긴 여정입니다.

제가 속한 예수회는 창설 초기부터 매우 다양한 사도직을 해왔는데, 가톨릭교회의 세계복음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미션>(중남미)과 <사일런스>(동아시아) 등의 영화를 비롯한 각종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경우 외부의 도움 없이 유례없는 자생적 신앙공동체를 일구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의 시작을 가져다준 책이라 할 수 있을 법한 <천주실의>도 알고 보면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원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천주실의는 명나라 말기 중국선교를 위해 평생을 바쳤으며 오늘날 중국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리치의 첫 번째 저작이 아니었습니다. 서양인 최초의 한문저작으로도 잘 알려진 리치의 첫째 저술은 서양의 우정론을 소개한 명제집인 <교우론>이었습니다. 교우론 1항에는 “벗은 제2의 나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는데 이 사유는 당대 지식인 학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리치는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게 되어 유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교우론은 그가 본격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소개하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와 동아시아가 막 대화를 시작하던 시기, 이를 가능케 해주었던 책이 다름 아닌 우정에 관한 내용이었다는 것은 현대 신앙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요한 15,15) 우리가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고 그리스도적 정신이 녹아든 삶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때 참된 의미의 전교가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이 이단이라고 문제시되는 종교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로 그들 종교가 초반에 제공하는 친밀감을 꼽는다고 합니다. 외롭고 불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는 청년들이 교회공동체에서조차 벗이 아닌 이방인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세심히 주위를 살피는 전교주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10월 24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사진: 유학자의 의복을 입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SJ)와 그의 벗이자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며 학자였던 서광계(徐光啓,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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