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몸이 아프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몸에 큰 병이 생긴 것이 아니라 마음의 피로가 몸으로 전이된 것 같다. 일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일을 하려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분명한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다. 걱정과 우울감이 쌓이면 어김없이 몸에 이상 신호가 온다. 아무래도 몸이 마음보다 먼저 나의 상태를 알고 반응하는 것 같다.

쉬려고 누워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관한 생각에 잠이 오지 않으면 몸이 마음에 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마음아, 조금만 천천히 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과 공간으로 가지 말아줘. 지친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 나의 첫 번째 방법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힘이 들 때면 나에게 사랑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 내가 하는 말에 온전히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좋다고 손뼉 쳐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편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다시 힘을 얻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혹은 아주 건강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주변을 기웃거려 본다. 많은 경우 존경과 동경의 마음에 빌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완벽하진 않다.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거나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 힘마저도 없을 때 이 방법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것도 아니면 사랑과 용기를 받으러 갔다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응원이 아닌지라 도리어 상처를 입게 되는 때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노오력’을 종용하는 말과 행위를 보고 들을 때면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모든 마음을 그러모아 주님 앞에 기도드린다. 미사 때 개인 지향을 넣거나 텅 빈 성당 안에 웅크려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님과 나눠 보거나 피정이나 기도 모임에 참석한다거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 어린 양을 좀 돌봐주세요’라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7박 8일 피정을 마치고 나온 내 마음은 왜 이렇게나 천근만근 무거워졌을까. 보통 세 번째 방법까지 오면 기쁜 마음으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기도 안에서 내가 가진 온갖 두려움과 욕심, 이해와 인정을 바라는 나 자신과 같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못난 모습과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하나씩 주님 앞에 내려놓다 보면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언정 우리를 사랑하시고 수난 안에서 우리의 아픔에 동반하신 그분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일까. 사랑과 희망을 가득 안고 피정 센터 문을 박차고 나올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 내내 주님의 모든 이를 받아들여 주시는, 이치도 논리도 맞지 않는 이 사랑이란 건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하며 울적해지기만 했다. 해야 할 일도 미루고 마련한 시간 안에서 얻은 것이라곤 더 깊은 참담함이라니.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당연하지만, 이렇게 참담한 마음이 영원하진 않을 거란 사실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앞서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을 자신 있게 나열했지만, 풀죽은 마음을 단번에 회복시킨 적은 많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회복 방법들이 모두 동이 나는 날들. 그래서 더 힘이 빠지고 모든 일을 포기하고 사라지고 싶은 날. 그러나 일을 포기할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날들. 그러니 몸에서 열이 나고 마음이 피곤해도 아침이면 일어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또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자주 실패하면서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시 회복의 순간을 기대하게 되었다. 어떤 날에는 내가, 어떤 날에는 당신이, 또 어떤 날에는 주님이 주신 사랑을 먹고 힘을 냈다. 나를 굳세고 겁내지 아니하게 만드는 귀중한 마음들. 그런 것들을 기억하며 조금 더 이 자리에서 기다려본다.

(이 글은 10월 24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허정수 에디트 슈타인

컴퓨터와 교육 공부를 마치고, 2018년 캄보디아 예수회 미션 내 하비에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학생 또는 교사로 지내면서 교육 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일어나는 즐겁고 신비로운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저의 삶을 다른 이와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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