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지 못한 수사생활

리전시(예수회 양성과정 중의 하나로 연학기간 중간에 사도직 활동을 하는 시기) 수사로 병원실습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2년 반이 다 되었습니다. 내과로 다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조금 있으면 정리할 시간입니다. 병원에 계신 교수님들은 펠로우(임상 강사)로 계속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종종 물어 오시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내년에는 꼭 수도회에 복귀해야 한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올해 시즌 2로 돌아온 이 드라마의 전 시즌 마지막 회에는 사제를 지망했다가 사랑을 선택하는 외과 의사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마침 제가 입회 전 외과 전공의로 일했던 덕에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궁금해하시고, 또 ‘수사’는 무엇인지, ‘신부’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물어 오십니다. 심지어 어떤 간호사 선생님은 드라마 속에서 사제 성소를 포기한 의사 캐릭터에 빗대어 저를 부르시는데, 그럴 때면 조용히 자리를 뜨거나 듣고도 모른 척을 하곤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 반의 시간을 돌아보면 가끔은 저의 ‘수사’로서의 정체성은 온데간데없고, 단지 ‘의사’라는 역할만 남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현재 저는 예수회와 공동체의 배려로 주중에는 병원 근처 숙소에서 생활하고 주일에만 잠깐 공동체에 돌아가 지내고 있습니다. 미사 또한 주말에만 참례하고, 바쁜 수련을 핑계로 기도생활에도 충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입회 전 의사로 일하던 때와 다른 게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신 레지던트로서는 병원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저랑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레지던트 동기,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고, 다른 직렬의 의료진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내과 분과를 한 번씩 거쳤기에 환자를 보는 일에 나름 자신감도 생겼고, 중환자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입회 전 외과 수련 때도 해보지 못했던 의국장을 본의 아니게 맡게 되어 나름의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제일 힘든 부분은 교수님과 레지던트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양측의 이견을 조율하는 일인데, 레지던트 동기들은 제가 교수님들 편을 든다고 성화이고, 반대로 교수님들께는 가끔 레지던트 관리를 못한다며 한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작년 여름 전공의 파업을 겪었고, 의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코로나19 범유행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처음 리전시 실습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나름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일과 영성에 균형을 맞추며 살아야지’, ‘기회가 되면 주변 분들에게 기도 모임이나 교리 수업을 통해 예수님을 전해야겠다.’ 등 지금 생각하면 다소 헛되이 보이는 듯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사부 이냐시오의 삶과 예수회 영성을 대표하는 문구 가운데 ‘활동 중의 관상’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저의 실습기 생활은 그저 ‘활동 중의 활동’ 일 따름입니다. 의사라는 역할에 너무 빠져 살다 보니 수도자로서의 정체성은 주말에 공동체에 돌아왔을 때만 겨우 지키게 됩니다. 주일 미사 중에만 천주교 신자인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쁘고 힘든 나머지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짜증이나 화를 낼 때가 있었고, 상처를 준 일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뒤늦게 후회하고, 스스로 ‘내가 수도자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이 맞나?’ 싶은 생각에 자책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루카 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바로 제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리전시는 저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울러 ‘수도자’라는 타이틀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완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인이면서 예수님의 벗으로 불림 받은 이들’. 예수회원의 정체성을 표현한 이 말이 새삼 깊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벗으로 불림 받아도 여전히 죄인처럼 살 수 있음도 느낍니다. 슬기롭지 못했던 실습기 수사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따뜻하고 측은하게 바라보시고 보살펴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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