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언어로 듣고 말하기

서원을 하고, 예수회 안에서 연학수사로서 철학 공부를 하게 된 지도 어느덧 반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전공과 너무나도 다른 철학 공부는 부끄럽게도 철학적 사유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저에게 정말이지 큰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수많은 사상가가 자신들의 개인적, 시대적 배경 안에서 사유하고 고민한 것들을 이성적으로 알아가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30여 년을 나 자신을 포장하고 나의 의견만을 가치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관철하며 살아왔던 제가 다른 누군가의 언어로 표현된 의견과 고민에 공감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의 틀이 아닌 타인의 틀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고, 듣고, 궁금해할 수 있을 때 이 철학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능력 있는 이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세상 속에서 그러한 모범을 찾고 따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새내기 연학수사의 첫걸음에서 함께하는 형제들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좋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걱정도 많은 저의 질문과 고민에 함께 해주는 동료 수사들은 언제나 저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여 줍니다. 단지 제가 쓰는 단어의 쓰임이나 정확한 뜻에 관한 이해를 넘어, 물음 하나하나의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의 소리와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움직임들을 들으려 애써 노력합니다. 그렇게 서두름 없이 충분한 시간을 곱씹고 맛보고 고민한 후에야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는데, 정리된 내용을 나눌 때면 다시금 저의 언어로 전달해주어야 하기에 더욱 많은 세심함과 노력을 들이곤 합니다. 형제들의 조언은 자신이 체험한 좋은 몫을 자신의 언어를 통해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겪고 고민했던 것을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의 언어로 표현을 시도하려는 마음이 담긴 조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격려와 응원에는 좋은 것을 전함에 있어 단 하나라도 빼먹지 않으려는, 때로는 조금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바심마저 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 안에서 동료 형제들이 보여준 대화 방법이 예수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낍니다. 제자들의 언어로 보시고, 들으시고, 고민하시며 당신께서 알고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금 제자들의 언어로 말씀하시고, 살아가시며, 보여주셨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제아무리 전능하시고 지선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전할지라도, 또 아무리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과 표현일지라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는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많은 나날 속에, ’그들‘의 언어로 듣는 법을 배워가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그들 안에서 사랑하시고 행하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부어 주시는 분, 내가 겪었던 나의 하느님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피조물의 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을 바라볼 때, 세상 모든 피조물의 언어로 나의 하느님을 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개인적 약함과 걱정과 불안에서 오는 세상적인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받은 제자들이 저마다 주위에 모여든 이들의 언어로 하느님의 위업을 전했듯이, 저도 그분께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모든 이들, 특히 가련한 이들의 언어로 하느님을 전하는 수도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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