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서품 소감 – 내 양들을 돌보아라

서품 신학 공부를 위해 1년여간 머물렀던 필리핀 마닐라 아루페 인터내셔널 레지던스(Arrupe International Residence)에서 주방팀 팀장 소임을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리를 했던 것은 아니었고, 공동체 주방에서 필요로 하는 식자재들과 공동체원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구입했던 것이 주요 임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마닐라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세가 도통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 때문에 불과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장을 보러 나갔던 순간은 늘 긴장 그 자체였지요. 그저 팀원들과 무사히 장을 보고 올 수 있기만을 하느님께 청하면서 공동체를 나선 기억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이렇듯 처음에는 의무감과 불안감에서 시작했던 공동체 장보기가 한 번 두 번 계속 거듭될수록, 제 마음 안에서 조금씩 선명해졌던 느낌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으로 이렇게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것과 현지 시장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이들 역시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를 단단히 착용하고 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사히 장보기를 마치고 공동체로 돌아와 물품들을 정해진 장소에 채워 넣었을 때, 그리고 이를 본 사랑하는 형제들의 행복해하는 표정과 미소를 마주했을 때 제 마음도 역시 행복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 이어지는 짤막한 대화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물어보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계속되는 이 질문에 베드로 사도 역시 세 번의 같은 대답으로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베드로에게 당부하시죠. “내 양들을 돌보아라”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그럴싸한 말마디가 아니라 실제로 먹이고 돌보고 챙겨주는 것이지요.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함1)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짧은 대화의 이전 장면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요한 21,1-5 참조)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숯불을 피워 물고기와 빵으로 아침밥을 손수 준비해 주십니다. (요한 21,9-10 참조) 그리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라고 하시죠. 이러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 이시라는 것(요한 21,12)에 손톱만큼의 의심도 두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은 말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몸소 제자들을 먹이시고 돌보시는 실천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사실 그 모범은 비단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의 아침밥 사건만이 아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분의 전 생애이겠지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분들이 미소한 저희 예수회를 영육으로 먹이시고 돌봐주신 덕분에 저 역시 예수회원으로서 매일 충실히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예수회에 베풀어주신 큰 사랑과 도우심에 보답하는 길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겠지요. 더욱 하느님 백성을 돌보고 살피는 예수회원, 더욱 겸손한 예수회원, 그리고 더욱 예수님을 닮고자 노력하는 예수회원이 되는 것일 겁니다. 새 사제로서 내딛는 저의 이 걸음이 하느님 백성을 향한 발자국이 되도록 이 삶을 충실히 살아내겠습니다. 이 험난한 시기,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돌보심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마음을 모아 청합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내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 21,15-17

(박민웅 신부는 지난 6월 30일 명동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1) 영신수련 [230]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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