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올해 어버이날은 토요일이었다. 매주 토요일은 초등부 미사가 있는 날이어서 미사 때에 초등부 학생들에게 오늘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는지, 효도는 했는지 등의 꼰대같은 말을 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마음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또 하나의 소리. “너나 잘해 인마!”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마음일지 여전히 잘 모른다. 아니, 잘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른다. 어쩌면 평생 모를지도. 나이가 좀 더 들면 어렴풋하게나마 조금 더 알아듣게 될까. 수도회에 들어와 겪게 되는 이런저런 만남 안에서, 아 이런 게 부모들의 마음인가 하고 조심스레 짐작만 할 뿐이다.

한국에서는 사제를 ‘신부님~’ 하고 부르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사제를 부를 때는 보통 ‘Father’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따지고 보면 아주 직접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나이와 관계없이 사제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신부라는 표현에도 영적인 ‘아버지’라는 뜻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솔직히 사제를 Father, 곧 아버지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 내 안에는 괜한 불편함이 좀 있었다. 이는 사제 서품을 준비하면서까지 계속된 내 안의 질문이었다. 아니, 자식을 낳고 길러본 경험이 없는 내가 어떻게 감히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을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과 같은 엄청난 호칭으로 내가 감히 불릴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이는 ‘나는 앞으로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보다 근원적 차원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 주일학교 초등부 학생들을 보면서 ‘아,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아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이들은 내게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가르쳐준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 해도 참 좋았는데, 뭔가 자꾸 욕심이 또 생긴다. 잘 자라주면 좋을 것 같고, 뭔가를 할 때는 더 잘하면 좋을 것 같고, 교리도 더 잘 알면 좋을 것 같고…. 비록 주일학교는 짧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주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보는 시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뉴스를 보면 이게 정말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참혹한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죄가 많아지면서, 부모와 자식이 갈라서고 서로 상처를 주게 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피해갈 수 없는 이 시대의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어버이의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녀를 먼저 사랑해주신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자녀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녀라서 이쁘다는 것을 알아듣기까지 나 또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 어버이들에게, 또는 주위의 고마운 분들에게 그만한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복음은 이 사랑이 원천적으로는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온 것임을 여러 차례 전하고 있다.

어버이날에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어머니의 마음’. 보통 1절은 많이 들어서 아는데, 2~3절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3절을 여기에 옮겨 본다.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버이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녀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오리, 어버이의 사랑은 지극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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