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도 간다

이제 갓 서원을 발하고 수련원을 나와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요즘 저에게 지난 수련기 2년은 마치 커다란 공백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아마도 수련기 내내 ‘요즘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게 큰 화두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허락된 그 시간 동안 저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깊어지면서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었고, 그 사랑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향했습니다. 특히 저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더 마음이 동했는데, 저 또한 한 명의 청년으로 살아오며 마주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이를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분의 마음에 머물러보았던 개인적 체험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더욱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찾아 읽던 중 저는 작년 한 해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는 90년대생 청년들의 관점에서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저의 지난날을 돌아보기도 하며 책의 흐름에 머물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IMF 당시 부모님의 고통을 함께 겪어야 했던 아픔, 극심한 경쟁 속에서 그저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피로와 스트레스, 현실에 대한 불안과 끊임없이 뭔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 쉴새 없이 살아온 시간에 작은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 강요받는 삶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바람 등. 이 모든 아픔을 겪어온 청년이 당장 제 곁에 있다면 제가 과연 무슨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지 마음 한켠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책을 통해 저는 스스로 청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겪었던 어려움과 갈등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실은 저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성취하여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과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십 대 후반까지 사회적 평가에 내몰리며 성장했지만, 회사에 입사하여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역할을 시작하자 이는 곧 무너져버렸습니다. 많은 사람의 축하 속에 이제 막 시작되는 새로운 삶의 계단 앞에서 저는 한 발 내디뎌 나아가는 게 두려웠습니다. 제가 진실로 원하는 삶이 이것인지 확신하지 못했고, 이런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주어지는 성과에 대한 요구와 평가 앞에서 지쳐갔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4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그저 평범하고 적당히 살면서 보장된 여가에 원하는 것을 만끽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타협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 깊은 곳 어딘가 또 다른 갈망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아낌없이 나를 내어주는 사랑, 만나는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수도 생활이라는 길로 한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수련기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또 아주 작게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어온 시간이었습니다. 그 작은 소리를 따라가는 여정에서 기도와 성찰이라는 도구를 통해 비로소 저의 하느님을 만나고 그 소리가 바로 하느님이 제게 바라시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세대 간의 갈등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현재 기성세대들에게야 90년생이 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나중에 90년생도 나이가 들면 ‘꼰대’로서 다음 세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적어도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다름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면의 아픔까지도 들여다보려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이며, 청년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해봅니다.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가, 예수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이들 질문을 품고 마음에서 올라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우리 각자를 향한 고유한 하느님의 마음을 만나실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이 내용은 2021년 7월 25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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