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노동 바라보기

처음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 날 이른 아침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쿠폰도 넉넉히 챙겨주고, 평소 동네 마트에서는 구하기 어려웠던 제품도 많아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주문한 다음 날 이른 아침, 종이로 깔끔하게 포장되어있는 신선한 식재료를 받고 현명한 소비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 뒤, 한 노동자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간 집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상자에 가려진 부당한 노동조건과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더는 해당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지금 사면 내일 바로 받아볼 수 있는데, 기업이 제공한 서비스를 이용할 뿐이고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 갈등의 수명은 짧았습니다. 해당 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았고, 모든 사고마다 공통되는 명확한 사실이 소비자의 책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존엄한 노동조건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유가족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기업을 상대로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고, 국가를 향해서는 재발방지대책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높은 산재 사망률을 가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발전소, 공장, 공사 현장 등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합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882명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에 추산되지 않은 죽음과 사고의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낙상 및 추락, 끼임, 절단, 화학물질 등에 의한 사고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며, 점차 감정노동, 과로, 트라우마로 인한 사고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세상 속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지향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사회교리에서는 사회적, 경제적 혹은 정치적 구조가 복음의 메시지와 모순되는 곳을 정의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것을 과제로 제시합니다1). ‘고발’이라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를 포함하는 과제를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일상의 숨어있는 노동을 찾아보고 관심 갖기를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무언가 혹은 내가 있는 장소 등이 어떤 과정으로 마련되는 것인지, 또 이것을 마련해준 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항상 깨끗이 청소되어있는 공간, 빠르게 도착한 맛집 음식, 매일 소독되는 공공 이용시설 그리고 가정 내의 가사와 돌봄 등 이 밖에도 수많은 노동으로 우리의 일상은 촘촘히 짜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 속 숨어있는 노동을 찾고 관심을 갖는 과정에서 복음의 메시지와 모순되는 지점이 보인다면 개인적 차원의 결심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발의 첫 단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결심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들이 모이면 사회적 연대의 물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일상 속 많은 노동은 연대의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꾸준히 반복되는 일터에서의 죽음과 사고들은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1코린12.26-27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에서 전한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이고, 따라서 고통과 영광을 함께해야 함을 기억하게 합니다. 나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숨어있는 노동을 찾아보고, 행동을 통해 연대로서 서로의 고통과 영광에 기꺼이 가닿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이 내용은 2021년 6월 27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1) DOCAT 무엇을 해야 합니까? 38p

신솔아 마리아

세상을 향해 생겨나는 수많은 ‘왜’를 따라오다 보니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서도 자본과 노동 간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박사과정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지니고 있는 장래희망은 따뜻하되 날카로운 시선으로 끊임없이 사회에 관심과 의문을 품고 그것을 옳은 방식으로 제기하는 연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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