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라 판타지아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이 곡은 과거 국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노래이다. 원어가 이탈리아어이기에 아무래도 사람들 대부분은 가사의 내용보다 그 선율에 더 반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만큼 이 노래는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멜로디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 이 곡이 보다 특별한 이유는 멜로디의 아름다움 못지않은 어릴 적 일화 때문이다.

지난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세계성체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셨다. 당시 어린이였던 나는 교황님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작 대회 당일 아침이 되자 ‘미아가 될 위험이 크다’라는 이유로 나를 데려갈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서울행 버스에 타기 위해 온갖 생떼를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서러운 마음에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울기만 하던 나를 위해 아버지는 비디오를 틀어 주셨고, 그렇게 나는 영화 <미션>을 보게 되었다. 폭포를 넘어 마주한 원주민들에게 예수회 신부가 연주해주는 넬라 판타지아의 원곡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를 보며 느낀 감동 덕분인지 교황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서러움은 어느새 가라앉았고, 대신 곡의 감미로운 선율과 아름다운 영화 속 이미지, 그리고 ‘예수회’라는 이름이 어린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후로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나는 예수회에 입회했다. 입회 후 수련과정과 철학 공부를 마쳤지만, 예수회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던 내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캄보디아 선교지에서 중간실습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캄보디아에 도착해 첫 두 달간 생존을 위한 기초 크메르어를 공부하고 곧바로 시골 본당으로 파견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 살면서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더 작고 더 가난한 마을에 사는 학생들을 찾아가 만나는 사도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홀로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다. 황금색의 황톳길, 에메랄드빛과 같은 녹색 평원, 뜨거운 햇볕을 뚫고 스쳐 지나가는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 문득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랐고, 이내 나는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전까지 뜬구름 잡는 듯했던 이탈리아어 노랫말이 비로소 와 닿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항상 자유로운 곳을 꿈꾸며, 내 영혼 깊은 곳은 자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자유로움이 나를 위로했고, 아이들을 향한 내 영혼 깊은 곳은 하느님의 자비로 가득했다. 그리고 점차 나의 미션을 깨닫기 시작했다. ‘환상 속에는 따듯한 바람이 있습니다. 마치 친구처럼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어 줍니다.’ 따뜻하지만 시원한 바람처럼, 가난과 크메르루주의 상처가 깊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친구와 같은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올라왔다. 이날의 체험 이후 예수회 성소에 대한 내 확신은 더욱 굳건해졌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극성인 요즘, 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 다시금 캄보디아에 와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동체 경당에서 홀로 넬라 판타지아를 불러본다. 비록 작은 경당이지만 높은 천장을 타고 맑은 공명이 이루어진다. 악기의 경우에는 나무의 종류와 두께, 결에 따라 서로 다른 공명이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고유한 악기인 우리 각자에게도 자신만의 공명이 존재한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 이는 어쩌면 나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사람들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공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그 모든 것이 어울려 캄보디아를 품는 따뜻한 바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넬라 판타지아는 그 제목처럼 단순히 ‘내 환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청사진이고, 활동 속에서 반복되는 관상이며, 곧 삶의 방향이다. 내가 계속해서 따듯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기도한다.

(이 내용은 2021년 5월 23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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