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略歷)의 주인공

예수회원의 부고를 이메일로 받았다. 지난 2월 21일 존 메이스(John D. Mace, S.J., 정대권) 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 미국 오마하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관구에 입회한 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사목하시던 중 건강이 약화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신 신부님은 주일 새벽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나는 이 전설적인(?) 신부님을 단 한 번 캄보디아에서 만났다. 한국어를 막힘없이 잘하셨으며 크게 성장한 한국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계신 분이었다. 한국 관구는 나흘 후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스물다섯 명의 예수회원과 신자분들이 예수회센터 성당에 모였다. 양성기 수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부님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었다. 보통 예수회원의 장례미사에는 고인의 약력을 기록한 작은 종이를 나누어 준다. 나는 신부님의 온화한 얼굴과 이력이 담긴 카드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메이스 신부님은 1962년 한국에 파견되어 23년 동안 일하셨고, 이후 필리핀 국제공동체 원장 10년, 동티모르 지구장 5년, 캄보디아 미션 비서 5년 등 긴 시간을 아시아에서 봉사하셨다. 한국 관구의 많은 회원이 필리핀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공동체 원장이셨고, 캄보디아에 계실 적에는 이미 그 책임을 한국 관구가 맡고 있었으니 신부님은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었다. 미사 강론에서 보편교회와 예수회를 바라보는 넓은 시선과 수도자의 깊이가 느껴지는 신부님의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성인들을 사랑하셨다는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다.

영성체 예식을 마치고 부관구장 신부님이 메이스 신부님의 약력을 하나씩 소개하셨다. 빼곡히 채워진 신부님의 여정은 무척 길고 풍성했다. 열아홉 살에 입회해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서강대학교의 기틀을 세우고, 필리핀에서는 젊은 수사들을 돌보는 원장으로, 먹고 사는 일이 힘겹다는 동티모르에서는 책임자로, 캄보디아에서는 은퇴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후배 회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메이스 신부님은 대학 총장, 원장, 지구장, 비서 등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소위 ‘능력자’셨고, 언어와 문화가 제각기 다른 나라에서도 봉사할 수 있는 유연한 분이셨다. ‘대단한 분이다. 화려한 여정이다.’ 약력 한 줄 한 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른두 살에 입회해 모국어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토종 한국 예수회원인 나와는 길 자체가 달리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계가 나의 집’인 것처럼 활동하신 신부님과 달리, 나는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몸과 마음이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감염병으로 시국이 흉흉해도 신학 공부를 핑계로 일상에 큰 변화 없이 지내는 내 모습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마치 장례식장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조화들을 바라보며 주눅이 든 느낌이랄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를 마치고 이어지는 인사말을 듣던 중, 문득 약력들 가운데 빈자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자리를 발견했다. 그건 하느님의 자리였다. 나는 신부님의 여정을 이끌어 가신 분이 다름 아닌 하느님이라는 점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신부님의 약력은 곧 하느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느님의 초대가 먼저 있었고, 그것에 응답하는 신부님의 여정이 이력들 사이사이에 담겨 있던 것이다. 그러니 이 화려한 여정은 비단 신부님의 것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선택에 앞서 하느님의 뜻을 찾은 신부님도 대단하지만, 그 삶을 이끌어 가신 하느님의 은총이 실로 더 놀라운 것이다.

신부님께서 추모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가르침은 ‘당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보라는 초대였다. 약력의 메시지 또한 단순히 ‘화려한 이력’이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이었다. 시선이 바뀌니 더는 나의 여정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메이스 신부님을 이끌어 온 하느님이 나의 하느님이라면, 나의 여정도 결코 궁상맞거나 부족하지 않으리라. 비록 신부님과는 개인적인 일화 하나조차 없지만, 메이스 신부님이 어느새 ‘나의 신부님’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서로 매우 달랐고 이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분과 함께 하는 하느님께서 바로 나를 이끌어가는 분이시므로, 이제 신부님과 나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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