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는 이의 마음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요즘 교회는 주님 부활 팔일 축제를 보내며 복음 말씀 곳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복음 21장의 티베리아스호숫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며 숯불을 피우고 빵과 물고기를 굽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평소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만큼 겸손한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 일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제가 2년간 실습기를 보냈던 캄보디아의 껌뽕톰이란 지역은 대도시인 프놈펜이나 시엠립에 비해 낙후된 시골 동네였습니다. 전기 또한 자주 끊겼기 때문에 대부분 가정은 식사를 준비할 때 여전히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방식으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사실 요즘은 나무를 때어 밥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를 수 있는데, 저도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아궁이에 군불을 피워본 적은 있지만, 그것으로 밥을 지어본 것은 캄보디아에서 처음 경험해 보았습니다. 나무를 때서 밥을 짓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는데 첫째로 불 조절이 어려웠고, 둘째로는 연기가 엄청나게 매웠습니다. 게다가 화재의 위험 때문에 불 곁을 떠날 수가 없어서 요리하는 내내 불 앞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땔감을 쪼개어 준비하고 그것이 잘 타도록 햇볕에 말리는 일 등 숯불을 피우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저희 공동체에는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밍’이 한 분 계셨습니다. 밍은 캄보디아어로 작은이모와 같이 부모의 손아래 여동생을 의미하는데, 한국처럼 가족 중심적 문화인 캄보디아에서는 가족이 아닌 타인을 부를 때도 이런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는 편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일과가 보통 아침 다섯 시에 시작합니다. 그러면 밍은 매일 같이 수도자인 저나 본당 신부님보다 적어도 한 시간은 먼저 일어나 숯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고 밥을 지어 아침을 준비해주셨습니다. 때문에 그분의 사랑과 봉사에 대해서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지만, 가끔씩 마디 마디가 툭툭 불거져 나온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과 까맣게 그을린 손을 볼 때면 밍의 말 없는 겸손함과 배려 덕에 제가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크게 들곤 했습니다. 비록 제 크메르어 실력이 부족한 탓에 기껏해야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밖에 드리지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수줍은 미소로 ‘오히려 부족한 음식을 먹어주어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며 손을 잡아 주시던 밍을 떠올리면 요한복음 속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모습이 딱 그러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제자들은 그분을 통해 명예와 높은 자리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위기의 순간,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그들은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방황하며 자신들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밤새 그물을 드리웠지만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한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측은하게 바라보시며 제자들이 추울세라 숯불을 피우고 배고플세라 빵과 물고기를 구우십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지만 전과 같이 대단히 특별한 기적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저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붙이고 반죽을 이겨 빵을 굽고 물고기들을 잘 손질하여 숯불 위에 놓고 타지 않게 계속 뒤집습니다. 밤새 지쳐 온기를 빼앗겨 버린 초췌한 모습의 제자들을 맞으시며 다른 말 없이 아침을 먹으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분의 겸손하고 잔잔한 사랑 앞에 어느 제자도 그분께 “누구십니까?”하고 묻지 않습니다. 잔잔히 타오르는 숯불처럼 마음이 따뜻한 분, 내가 잘못한 일을 탓하지 않으시는 분, 그분을 모른다고 배신했건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분. 제자들은 굳이 묻지 않아도 그분께서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길었던 사순 기간이 끝나고 예수님의 부활을 맞았건만 아직 그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을 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저 역시 수도 생활 이전의 자리로 자주 돌아가곤 합니다. 자주 유혹을 받고 때로는 넘어져 주저앉아 있는 저를, 예수님은 탓하지도 혼내지도 않으시고 오늘도 조용히 부르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표지사진: 예수회 캄보디아 미션 껌뽕톰에서의 리전시 시절 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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