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을 꿈

“나중에 사제가 되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사도직)이 있어?”

예수회에 입회하기 전에도, 입회하고 나서 7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늘 구체적이지 못했다. 신자들과 세상에 자그마한 위로를 전하는 충실한 사제가 되는 것을 간절히 염원했지만, 동시에 그것은 막연하기만 했다. 훌륭한 모범이 되는 사제들은 주위에 많았지만, 그 모습을 그대로 본받기란 나에게 결코 쉽지 않았다.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나의 한계를 더 크게 맞닥뜨려야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지만, 그것은 항상 요원한 일이었다.

이런 내게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보낸 지난 2년간의 리전시(중간실습기)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미션지역’인 ‘미에라이온(Miarayon)’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미션지역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대강이라도 묘사를 하자면 이러하다. 가난한 지역, 사제가 부족한 지역, 그리고 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지역. 전통적으로 민다나오는 일찍이 16세기 말부터 예수회 미션이 시작된 곳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가난한 지역을 찾아 들어간 후 가장 먼저 학교와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미션이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고 나면, 소유권과 운영권을 교구에 넘기고 더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가서 다시 학교와 성당을 세우기를 반복했다. 이런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져, 필리핀 예수회원들은 사제로 서품되면 곧바로 미션으로 파견되어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된다. 내가 잠시 머물게 된 미에라이온도 이러한 미션 중 하나이다.

산간에 자리 잡은 미에라이온은 아침 기온이 섭씨 15도까지 내려가는, 필리핀인들에게는 제법 쌀쌀한 곳이다. 원주민들은 고유한 언어와 전통을 보존하며, 주로 커피, 배추, 브로콜리 등의 작물을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소득이 낮고 병원이나 마트 등의 편의시설이 거의 전무하며, 인터넷은커녕 전화조차 잘 터지지 않는다. 예수회 공동체 건물 역시 따뜻한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가 나무판자로 지어졌기 때문에 밤이면 찬바람이 방안으로 새들어온다.

미에라이온에는 두 명의 예수회원이 파견되어 약 700명의 학생이 있는 중고등학교, 그리고 본당 하나와 스무 개의 공소를 관할한다. 매일 두세 개의 공소를 돌아다니며 미사를 거행하는 사목활동에 더해 학교운영을 감독하고 책임지는 것이 주요한 사도직이다. 여기에 더해서 정부 기관의 행정에 주민들을 연계해주는 일, 농작물의 판매 활로를 찾아 연결해주는 일, 약품 및 각종 물품을 시가지에서 구매해주는 일 등의 사회활동 역시 그들이 맡은 임무이다. 선교사들을 따라다니며 구경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내 체험의 전부였지만, 사제서품 후 이곳에 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샘솟음을 느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두려움도 짙게 올라왔지만, 여기에서 선교사로 살아보고 싶다는 나의 염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 옛날 이곳에 파견되었던 예수회 선교사들을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그중에는 순교자들도 있었고, 큰 업적을 세운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이 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다에서 생명을 다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심혈을 기울였을 사도직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본 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적응하지 못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미션에 파견되기를 간절히 원하며 성실히 준비했지만, 파견조차 되지 못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떤 그럴싸한 실패를 그려봐도 그것이 결코 실패로 여겨지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미션에 실패라는 것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미 그 미션을 꿈꾸고 임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 세상에 실패 없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미션일 것이다. 이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다시금 깊이 되새기게 된다. 실패 없을 꿈을 직접 그려보면서.

(이 글은 3월 28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표지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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