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가끔 ‘처음’이란 단어만큼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을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니 ‘첫-‘으로 묘사되는 기억이란 보통 머리보다는 마음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빳빳한 새 옷을 차려입은 탓이었는지 온몸이 힘이 바짝 들어가 아우성을 치는 듯했던 꿉꿉한 성당 지하주차장에서의 첫영성체. 그때는 분명 영화 속 주인공이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해본 것 없이 마냥 서툴고 가슴 시리기만 했던 첫사랑. 스스로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으로 내내 심란하기만 했던 수도자로서의 첫서원까지. ‘읍내’라는 정감 있는 우리네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이국의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요즘은 바쁜 일상 탓에 작은 일조차 머물러 성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언젠가 한 삶을 온전히 돌아볼 순간이 찾아왔을 때, 삶에서 온전히 처음이었던 것들의 흔적을 점과 점 사이를 잇듯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의 역사를 대충이라도 반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처음이란 이름으로 마음속에 또 하나의 점이 찍히는 일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본당 안에는 오래전 인도에서 활동했다는 전설적인 예수회 선교사의 이름을 빌린 자그마한 기숙사가 하나 딸려 있다. 이곳의 빈약한 교육 현실과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가 여의치 않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저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이곳에 모여든 서른 명의 아이들이 예수회원 세 명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 한창 먹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임에도 본당 형편상 하루 세끼를 1달러로 충당하는데, 본당 토지에서 부쳐 먹던 쌀마저 올해는 홍수로 농사를 완전히 망친 탓에 조금 더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한국의 또래들에 비하면 별달리 특별한 것을 해주지 못함에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평소 불평 한마디 없고 어쩌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는 날이면 한껏 들뜬 모습을 보며 이 아이들이 간직한 순수함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본당에서 삼 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 이 시기 동안 학업에 열중하는 것 외에도 가랑비에 옷 젖듯 그리스도교적 가치에 익숙해지게 되어 더러는 자진하여 세례를 받기도 한다. 특별히 지난해 말에는 열두 명의 졸업예정자 모두 세례를 받는 커다란 경사가 있었다. ‘열두 사도’라는 애칭을 직접 붙여준 본당 신부님은 물론, 우리 모두 한동안 가는 곳마다 이 땅에서는 결코 흔치 않은 이 기쁜 소식을 자랑하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이별의 시간이란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 은밀한 발걸음으로 찾아온다고 했던가. 어느덧 찾아온 떠나는 날 아침,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축복을 청하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여전히 말이 서툰 탓에 축복과 당부에 걸맞은 말을 건넬 수 없었으므로 각 사람 머리에 손을 얹고 속으로 기도를 해줄 뿐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 내어 줄 수 있는 축복이란 것이 있다면 모조리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 내면에서 강하게 일어남을 느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후의 빈자리는 헤어진 이의 흔적처럼 그만큼, 그 온기가 차지하고 있던 만큼의 자리를 남겼다. 그날 밤 신부님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기쁨의 이야기꽃을 피웠던지를.

새삼 부모님의 형제로부터 시작된 개인적 신앙의 역사가 그 옛날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출발했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어서 한국 땅을 거쳐 간 얼굴도 이름도 모를 모든 선교사와 협력자, 은인들을 생각했다. 모름지기 그분들도 매일 저녁 함께 모여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늦은 밤 홀로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하루를 돌아보며 아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 하루 어떤 사건이 있었으며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평소와 달리 표정이 어둡거나 말끝을 흐리는 아이는 없었는지. 오늘 미사 중 전례를 어찌나 아름답고 예쁘게 잘했는지, 또 독서는 얼마나 차분하게 잘 읽었는지를. 그리고 어쩌다 아이들의 이름을 적을 일이라도 생기면 얼굴을 떠올리는 가운데 그 이름의 주인에게 밝은 미래만이 깃들기를 아주 잠시나마 기도했을 것이다. 그 모두가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문득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기가 그런 사랑의 대상이었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될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곧 반대로 스스로 같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사실 ‘벙쁘로윤호(윤호수사)’라는 존재야말로 바로 그 사랑이 뿌리내린 결실이 아니던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잠시나마 이 땅에서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 어떤 긴 사랑의 여정 한가운데 있다는 결론에 닿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이 캄보디아에서의 첫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랜 사랑이기도 했다.

언제쯤이면 알게 될까. 그해 겨울, 너희가 누군가의 유일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때론 서툴고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던 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사랑이 밋밋하고 미적지근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본당을 늘 가득 채우던 밝은 웃음소리와 떠나기 전에서야 겨우 수줍게 끌어안은 팔에 전해진 순수한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을. 비록 몇몇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라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이 사랑의 열매가 맺을 것을 믿기에, 마냥 아쉽고 슬프거나 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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