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그러나 혼자

온라인 환경은 이제 일상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모든 순간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좋은 식사를 위해 맛집 사이트를 검색하고 친구들과의 추억을 SNS 안에서 기억하며 공부마저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온라인은 지식과 관계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으며, 특히 소셜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가 눈길과 숨결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던 기존 공동체를 온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가 관계적 측면에서 충분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구성원 간의 화합과 연대를 더욱 심화한 좋은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환경에서 출발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시작단계부터 구성원들의 공동 관심사나 이해관계에 따라 모인 집단으로서, 약한 유대감이 그 특징입니다. [1]  즉 우리는 온라인에서 서로 적당히 알고 적당히 연결되는 것입니다.

“초연결 사회는 국가, 문화, 언어 따위를 뛰어넘어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 우리는 현실과 단절된 채 저마다의 가상 세계에 갇혀 있다.” 이는 터클(Turkle)이 자신의 책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우리는 함께 있지만 실제로 각자는 혼자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어떤 이들은 점점 공감능력을 잃고 안으로 움츠러들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더는 자신을 표현하고 실제 이웃과 접촉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한 해 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제가 수업에서 만난 대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외로움과 관계적 불만족을 호소했습니다. 그들에게 지금의 비대면 사회는 참기 힘든 단절의 세계입니다. 어느 학생은 수업 내 조별 모임을 통해 며칠 만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 것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을 괴롭히는 우울과 불안이 일상의 친교를 잃었기 때문임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온라인에서의 소통은 아직 충분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 교제하던 친구와 지인들을 온라인 환경에서만 만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합니다.

온라인 수업을 마무리하며 직접 만나 진행하던 대면 수업의 절반 정도밖에 그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의 생기있는 눈빛과 웃음이 실종된 수업 분위기는 건조하기만 했고, 질문이나 새로운 제안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상으로 나누는 대화에는 생기가 부족합니다. 때론 화면에 나오는 다른 이들이 실재인지, 그저 영상 신호로 매개된 인공지능인지 미심쩍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 고민이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과도기적인 것에 불과한 걸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접속의 증대가 상호 이해와 관계를 심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미디어와 온라인 활동이 소용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고 여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때, 온라인은 훌륭한 친교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곧 우리는 인간의 관계적 본성을 온라인에서도 옹호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라인 환경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며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여전한 갈망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앞선 물음에 답하자면 온라인 커뮤니티가 기존의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또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자기를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조건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갈망이 있습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된 오늘을 사는 우리는 다시 다음의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사랑하는 그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현재 당신이 무슨 이유에서든지 관계하고 있는 그 사람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가 이후에도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인지 어떤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무슨 이유로든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사랑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만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1] 프란치스코, <제53차 홍보 주일 담화>, 2019.6.2.,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0호(201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