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공정’ 벗어나기

언젠가부터 우리는 방송국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프로그램에 관심을 크게 두었던 적이 있습니다. 기획사 연습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듀스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었죠. 물론, 예전부터 좋아하던 AKB48이라는 일본 아이돌그룹이 출연해서 열중하여 보기도 하였지만,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일반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그룹 멤버를 뽑는다는 요소는 저 같은 소시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지하는 멤버가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하기를 바라던 제 마음은 일 년 만에 깨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데뷔멤버를 미리 정해 놓고 투표결과를 조작했던 사건이 발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가 사회문제화되었고, 사람들이 공정성에 대해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분석해서 쓰려던 논문이 엎어지는 등 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이후 트로트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예 보지를 않았습니다.

공정성, 조작… ‘국민 프로듀서’라는 환상을 심어주며 시청자를 우롱했던 이 희대의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은 ‘투표수 조작’에 관해서만 논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 자체가 공정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실상 참가자들에게 같은 것은 ‘연습생’이라는 호칭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연습생이라고 해도 어떤 기획사에서 연습했느냐에 따라서 대우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라면 연습생 중에서도 기획사 이름의 명망에 따른 관심을 받았지만, 중소형기획사의 연습생은 그러한 관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시청자에게 어필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한 번이라도 더 화면에 담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중소기획사인지, 대형기획사인지에 따라서 화면에 담기는 비율 자체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근본적인 격차를 외면한 채, 연습생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야말로 ‘환상 속의 공정’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이라는 단어가 이곳저곳에서 들립니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리는 까닭은 우리가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공정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정의 정의를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능력대로 성취를 가져가는 ‘능력주의’로 보는 시각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단순하게 보면 공평한 기회를 주고 능력을 통한 경쟁을 통해서 결과를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점수로 딱 떨어지는 능력측정이야말로 공정하다고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격차가 하나도 반영되어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는 일은 자신의 노력으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경제력, 시간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한꺼번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도 경쟁에서 얻은 승리는 앞선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한 승리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인한 승리로 포장되고 맙니다. 이는 근본적인 격차를 보지 않은 채, 출발선에 서 있는 연습생만을 바라보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환상 속의 공정’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공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 궁금해집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점수로 환산되는 능력을 공정이라고 생각하셨다면 평범한 어부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점수에 얽매이는 것과 같이 신분의 고하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당신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하신 점을 볼 때 능력만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신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환상 속의 공정’을 이제 그만 잊고, 예수님 안의 공정과 공동선을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내용은 2021년 2월 28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김세진 시몬

관심사가 있으면 언제나 달려가는 것을 좋아하는 30대 청년입니다. 문학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했지만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어 전과와 복수전공 변경을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는 중국학, 중어중문학,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대학원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습니다. 변화무쌍한 청년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15년 가량을 서로다른 가톨릭계 미션스쿨을 다니는 내내 교목실 활동을 하고, 군대 또한 군종병으로 다녀온 체험을 통해 ‘하느님은 나를 절대 놓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재단법인 희망제작소에서 사회혁신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노동을 연구하면서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의 청년연구자모임인 샬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일본학과 통계학을 ‘또’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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