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전례력으로 대림 3주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고 계셨는지요? 오늘은 대림시기에 알맞은 글을 한 번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 마음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신 아기 예수님보다 석 달 먼저 제 곁에 찾아와 더욱 특별한 대림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저의 조카, 시윤이 이야기입니다.

시윤이가 태어난 지난 10월 6일을 기점으로 저희 본가 식구들의 삶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시윤이의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다른 식구들까지도 말이지요. 시윤이가 저희 곁을 찾아온 이후 저희 가족의 모든 관심은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시윤이는 식구들이 나누는 대부분의 이야기 중심에 서 있었고, 시윤이 덕분에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시윤이를 처음 만난 건 시윤이가 태어나고도 한 달이 지난 후인 11월 중순이었습니다. 태어난 직후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대학원 종합시험 준비, 공동체 일정, 그리고 코로나의 영향 등으로 그 만남을 잠시 미루어 두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만난 이 천사 같은 아이는 단번에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요! 그 사랑스러움을 어떠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볼까 고민해봤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표현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제한을 두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연신 찍어대긴 했지만, 이 또한 시윤이의 사랑스러움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짧은 첫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동체로 돌아온 저는 몇 날 며칠 시윤이의 사진과 영상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혼자 보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조카를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자랑을 해서 이제는 누구에게 시윤이를 보여줬고 누구에게 안 보여줬는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시윤이는 계속해서 보아도 그때마다 새로운 사랑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는 시윤이의 사진을 바라봅니다. 한 아이에게 이렇게 푹 빠져있는 제 모습을 성찰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모습이 바로 이러하지 않을까?’

한동안 저의 영적 지도를 담당해주셨던 신부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신다.” 지난 삶 안에서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저 스스로 다그쳤던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다. 잘하고 있다는 말보다는 조금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품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도 여정을 걷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신부님께서 해주셨던 그 말씀을 떠올립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깐깐한 저와는 달리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너무나도 관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저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시윤이가 미소지을 때마다, 옹알이할 때마다, 작은 몸짓을 지을 때마다 온 세상을 다 얻은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그분께서는 저를 통해 그러한 행복을 느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요한 4,16ㄴ

머리로는 받아들이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윤이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하듯,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도 저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점차 명확하게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저의 조카 시윤이에게 김남조 시인의 시. ‘편지’의 첫 구절을 들려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말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해주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게 새겨봅니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One Reply to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1. 이 세계에서의 만남은 항상 이별을 동반하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렇듯 관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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