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캄보디아 시골 본당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갑니다. 제 방은 1층을 성당에 딸린 기숙사 학생들이 강당으로 사용하는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목재로 벽과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고, 습기 탓에 뒤틀려버려 이제는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문으로 창을 낸 집. 딱히 훌륭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제 기준에서는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흔한 캄보디아식 가옥입니다. 평소 우리 기숙사 아이들의 마음처럼 늘 열려있는 창문으로 모기가 자유로이 넘나드는 탓에 24시간 모기향을 피우고 살다시피 하는데 그럭저럭 지낼 만합니다. 또한, 모든 방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르브론 제임스라면 힘껏 점프해 이웃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을 정도이고, 생리현상으로 인한 화장실 사용까지도 온 공동체 식구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구조이지만 이마저도 살다 보니 지낼 만한 것 같습니다. 온종일 알아듣기 힘든 현지어 세례에 머리가 멍해질 즈음인 늦은 저녁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방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자기 생활의 고유한 영역이 매우 필수적인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신만의 공간이야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겠지만, 이에 관해서라면 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입니다. 유명 페미니스트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되기도 하는 울프는 여대에서 했던 두 차례의 강연을 이듬해 책으로 엮어낸 <자기만의 방>(1929)에서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으로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백여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는 도서관 출입조차 불허되던 그 시절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방 한 칸은 울프가 ‘여성’인 작가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열 사람이 한방을 같이 쓰던 군대 생활관 제 침상에서 읽었습니다. 당시 전역이 그리 길게 남지 않은 병장으로서 그나마 텔레비전과 가장 멀리 떨어진 이층침대의 1층 칸을 쓰며 자기만의 공간을 열심히 찾고 있던 터라 그런지 이 대목이 매우 인상 깊게 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 방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복음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루카 9,57-58

비록 성경 본문에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당신의 방을 가져본 일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그분은 늘 끊임없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삶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누구든 곧, ‘하느님 나라를 위한 삶의 여정 위에서 개인적 안정이나 편안함에만 안주하지 않는 삶’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레 이르게 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그런데 수도자로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저에게는 앞서 소개한 자기만의 방이 하나 있습니다. 다소 보잘것없이 묘사하기는 했으나 이는 울프의 방처럼 제가 수도자로 살아가게끔 해주는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입니다. 때로는 가만히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공부하며 좋은 예수회원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는 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제 방을 두고 성찰을 해봅니다. 저는 결코 당신처럼 방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는 고백을 절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저는 결코 그분과 같아질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이 살기를 바랐지만 온전히 버리지 못한 것 중 하나이며, 오히려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자기만의 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당신이 갖지 못한 이런 좋은 몫을 저에게 주셨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처럼 항상 사람들을 찾아 나설 수 없는 저에게 방은 곧 베이스캠프와 같습니다.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났을 때 쉬면서 다시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공간. 그 안에서 저는 울프처럼 저 자신의 신원의식을 유지해 나가고 계속해서 꿈을 꿉니다.

“One cannot think well, love well, sleep well if one has not dined well.”

잘 먹지 않는다면 잘 생각하고 잘 사랑하고 잘 잘 수가 없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에 담긴 강연을 들었던 학생들이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결국에는 차가운 묘비에 새겨진 이름 한 줄로 기억될 만큼 긴 시간이 흐른 오늘날, 여성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방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바라는 자기만의 방을 위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투쟁’은 사람에 따라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질 법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투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란 결국, 마치 제가 별 볼 일 없는 제 방에서 느끼는 편안함, 혹은 따뜻한 한끼 식사에서 얻어지는 포만감처럼 그리 대단하거나 무리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Someone has to die in order that the rest of us should value life more.”

남은 우리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

부디, 자기만의 방이라는 소박한 가치를 위해 내일 하루 누군가 또다시 목숨을 걸거나 다쳐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2 Replies to “자기만의 방”

    1. 10년 전 여름에는 방은 커녕 고장난 냉동창고 뿐이었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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