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성찰: 기둥

서강대학교 캠퍼스 안을 둘러보다 보면 제각각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러 건축물을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건축물들로 통일성을 가진 주변의 다른 대학들과 비교해보면, 서강대학교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건축물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것을 손쉽게 알아챌 수가 있습니다. 한 건물을 지을 때마다 당시 유행하던 마감재를 사용했을 테니, 대학이 확장되어가는 역사가 시각적으로 고스란히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다양하게 때론 산만해 보이는 교정을 둘러보면, 요즘 건축물과 비교했을 때 낡고 투박한 건축물도 섞여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서강대학교 본관입니다. 나름 보존해야 하는 건축물이라고는 하는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짧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손쉽게 수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해외의 많은 정보가 제한적으로 유입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세계적인 건축가 밑에서 일을 하던 이가 귀국하여 설계한 건축물이 바로 서강대학교 본관입니다. 초기작이다 보니 아직 자신의 건축이 무르익기보다는 배운 것을 열심히 잘 표현한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건물은 전면부가 가장 유명한데, 저에게는 다른 부분이 더 잘 눈에 띄었습니다. 이 건축물에는 두 종류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각기둥으로 벽과 딱 붙어 있습니다. 가끔 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 안 모서리에 한 뼘 정도가 툭 튀어나와 있는 그런 기둥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원형이라 보기엔 길쭉한 타원에 가까운 기둥이 있습니다. 이 기둥은 사각기둥과 달리 벽과 그리 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바닥이랑도 친하지가 않습니다. 바닥과 닿지 않는 기둥이라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둥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둥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는 무언가를 떠받친다는 기능을 염두에 두고 사용합니다. 그러니 지탱하는 것 없이 홀로 서 있는 기둥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둥은 기둥인데, 기둥 같지 않은 기둥입니다. 기둥이 이러하다 보니 자연스레 바닥은 조금 더 튼튼하게 설계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둥은 지지하고 싶은 것만 지지할 수 있도록 자유로워졌습니다.

서강대학교 본관 한켠에 자리한 기둥

이 기둥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런 기둥은 벽과 맞닿은 기둥보다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기둥임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저 기둥처럼 주변의 바닥이 알아서 잘 버텨주어, 내가 지탱하고 싶은 것만 지지하고는 멋들어지게 홀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 건축물처럼 주변의 바닥과 벽이 알아서 자신의 하중을 잘 견디어 자립하고 있다면 이런 기둥도 참 좋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서강대학교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 중 오직 본관에서 일부의 기둥만이 그렇듯, 이를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기둥이 이러하다면 건축물이 버티고 서있을 수가 없는 것처럼, 기둥은 건축물이 튼튼하게 서 있기 위해 의지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벽과 바닥과 지붕 모두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집이 무너져버렸는데 기둥만이 홀로 남아있다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둥을 바라보며,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할만한 기둥이 되어주었는지, 또는 불어닥치는 바람을 막아줄 벽이 되어주었는지,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바닥이 되어주었는지, 안전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되어주었는지, 뜨거운 햇살과 쏟아지는 빗줄기로부터 보호해주는 지붕이 되어주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적어도 기둥이 필요할 때 기둥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있지는 않도록 다짐해 봅니다.

(이 글은 1월 24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표지 사진: 서강대학교 본관 전면부 (출처: 서강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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