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는 삶의 의미

나는 현재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에 있는 បន្ទាយ​​​​​ព្រាប(번띠어이쁘리업)이라는 장애인 직업기술 재활센터에 파견되어 사도직을 하고 있다. 이 재활센터는 지난 1991년 무상으로 토지를 임대한 현지정부의 도움으로 예수회(Jesuit Service Cambodia)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근 28년 동안 육체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의 숱한 차별과 냉대를 겪어내야 했던 수많은 장애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해 왔다. 실제로 최근 그간의 사업을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센터를 졸업한 지 오래된 이들을 찾아가서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었는데, 졸업생들이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사업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가족과 마을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센터가 여러 좋은 사업을 통해 캄보디아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9년 7월 캄보디아 정부는 장애인 관련 NGO들이 일할 복합단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현재 건물의 철거 및 신축을 시작하겠다는 갑작스러운 계획을 공표하였다. 따라서 센터는 하루아침에 빌려쓰던 부지를 내어주고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올해부터 새로운 학생들을 모집하지 않기로 어렵게 결정했고,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까닭에 교사들을 비롯한 직원 대부분이 무언의 합의 하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요즘 나는 옛 건물이 절반은 무너져버려 폐허나 다름없는 센터에 매일같이 출근해서 남아있는 행정업무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이제는 지난날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만큼 낯선 현실의 이미지이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중한 기억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건 바로 일 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학생들과의 추억이다. 지금도 여전히 서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더 어리숙한 크메르어로 소통을 했었기에 보다 애틋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학생들 가까이 접근해서 말을 이어가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지만, 몇몇 학생들은 아무 말 없이 무표정을 견지한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일과를 마친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해 매일 학생들 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평소처럼 남학생 기숙사 근처에 들어서던 어느 날은 ‘오늘은 크메르어가 잘 들리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작정 기숙사 안으로 불쑥 들어가서 침상에 앉아 마냥 웃어 보기도 하고 캄보디아와 한국의 인구, 특징, 음식, 혹은 축구 이야기 등 그들이 관심을 느낄 만한 이야기들을 이어가며 학생들을 웃겨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여자 기숙사에는 남자 기숙사처럼 그렇게 불쑥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가끔 숙소 앞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여학생들 사이에 끼어들어 살인미소를 발사하며 안부 등 이것저것을 묻곤 했다. 이외에도 도서관에 다 같이 모여 TV 시청을 하는 주말에는 한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이해도 안 되는 코미디 혹은 드라마를 함께 시청하며 타이밍에 맞춰 낄낄대며 함께 웃으려고도 노력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가끔은 이런 내 일방적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는 일도 있었다. 나 같은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사랑 고백을 했던 특수교육반 여학생, 자기 인생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오랜 시간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던 농업반 남학생, 페이스북 메신저로 시도 때도 없이 뭐하냐고 물어보던 기계반 남학생, 나를 “홍~”이라고 부르며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재봉반 여학생 등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고마운 추억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한 명 두 명씩 쌓여갔다.

30여 년의 긴 역사를 마무리한 마지막 졸업식

모든 학생이 떠나가고 텅 빈 센터 구석에 자리한 사무실,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는 동안 과연 지난날 내게 학생들과 함께했던 ‘정상적 일과’가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본다. 마지막 학생들이 졸업한 지 이제 겨우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에 쫓겨 지내다 보니 마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듯한 기분이 든다.

항상 내 주변을 맴돌던 학생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차후에 캄보디아 실습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앞으로 영영 만나볼 기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학생들뿐만 아니라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나 또한 언젠가는 결국 모든 이들의 주변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모든 것들로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고민 앞에서 지금의 나는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그저 새로운 것들로 교체해 가며 바쁜 일상의 리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 갈 것인가? 아니면 그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간직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볼 것인가?

가끔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인지, 옳게 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받는 누군가를 알게 되고 바라보고 그들과 동행하는 한, 최소한 내 고통의 의미를,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으리라. 그렇게 주님은 나를 부르시는 듯하다.

[전시안내] 기억의 형태 (The Shape of Memory)

반티에이 쁘리읍 마지막 졸업식이후 준비해온 십자가를 드디어 전시합니다. 캄보디아 장애인들이 살던 집이 십자가가 되어 한국 서울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33개의 십자가는 마포구의 어느 빈집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라진 공동체를 아쉬워하며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코로나시대, 서로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속에서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류진희 작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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