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수년 전, 아픈 어깨에 도움이 될까 싶어 요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위파사나(Vipassanā)’라는 말을 처음 접했습니다. 이 말은 부처님 시대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였던 말로,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학 공부 마지막 해를 마닐라(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보내던 중 짧은 방학 동안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 필리핀에도 위파사나 명상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 문을 두드렸습니다. 짐을 싸고 출발하던 날 아침 공동체 미사 복음으로 선포된 말씀은 마침 “와서 보아라.”(요한 1,39)였습니다. 2500여 년의 전통으로 전해 내려온 위파사나 명상을 두고 사람들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말한 들 제가 직접 참여해서 깨우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상장소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곳으로, 바나나, 코코넛 나무들이 우거진 한적한 마을이었습니다. 가톨릭의 피정의 조용한 분위기와도 얼핏 닮아 있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참여자 절반 이상이 해외(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온 20~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가고 인공지능이 미래를 선도한다는 첨단사회에 진입한다 해도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바라보는 명상에 대한 깊은 관심은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접수와 더불어 휴대전화까지 반납하고 열흘간 성심껏 집중해보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낯선 침대여서 그랬을까.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이던 첫날을 밤새 뒤척거렸습니다. 새벽 4시가 되자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별들이 아직 총총 빛나는 시간, 오랜만에 이른 새벽에 깨어 익숙지 않은 가부좌로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오전과 오후 내내 이런 명상이 이어지는 동안 들었던 느낌은 ‘어휴, 힘들다!’. 한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얼마 안 가 주변 여기저기서 다리를 비롯해 온몸이 아프다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하루 8~9시간을 명상으로만 앉아있는 경험이 처음인지라 뻐근함을 비롯한 저항이 안에서부터 오는 건 당연했습니다. 1~2일 차를 견디며 ‘내가 이것을 굳이 지금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올라왔지만, 반대로 ‘끝까지 해보면 무언가 응답이 있겠지.’라는 마음도 함께 올라왔습니다.

무척 더딘 시간 속에 상반된 마음이 오고 가는 동안 전체 일정의 중반인 5~6일 차가 지나자 조금씩 몸과 마음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이제는 제법 오래 앉아있어도 초반보다 그 통증의 강도가 서서히 약해진다는 걸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코로 숨을 쉬는 호흡 관찰 이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몸의 각 부분을 천천히 바라보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마음속에 깊은 내적 고요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은 생성, 소멸된다.’라는 원리에 따라 현재 일어나는 것들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이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관념과 상상, 자신 안에 쌓인 이미지들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식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의 실재(reality)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모든 현상과 존재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한한 것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명상 중 하루는 조그만 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제 목덜미에 앉음을 느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손으로 툭 쳐내었겠지만, 곧장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명상에 집중하며 기다렸더니 벌레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프로그램 일정 중 저녁 7시가 되면 고엔카 선생의 쏙쏙 들어오는 강의를 비디오로 시청했는데 그 내용이 가톨릭 영성 가운데 제가 특히 수차례 익히고 들어왔던 이냐시오 영성과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일례로 위파사나에서 강조하는 평정심(equanimity)은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불편심(不偏心)과 그 맥락이 유사했고, 특히 자각(aware)하라는 가르침은 이냐시오 성인이 거듭 권고하는 성찰(examen)과 연결되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동안 인근 지역의 화산 폭발로 재가 날아들어 불가피하게 일정을 하루 일찍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다른 불교 전통에서도 저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발견하는 귀한 체험을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사실 위파사나 프로그램의 일정은 무척 단순하며 심지어는 지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침묵 가운데 깊은 명상에 잠겼다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자 전과 달리 불필요한 것에 애써 힘을 쓸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간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던 저의 사소한 습관들이 눈에 들어왔고, 아침에 드리는 기도에서는 좀 더 집중해서 앉아있을 힘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하루하루 빠듯한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사회에서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유지하며 행복을 발견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때로는 요동치며 흘러가지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닻을 내려 실재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자리 잡게 할 수 있다면, 비록 출렁이는 험난한 파도가 나를 흔들지언정 내적으로는 평화로이 항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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