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향한 사각지대로

5년 전 여름, 서강대에서 주관하는 영국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된 고등학생 일곱 명, 그리고 이들을 도와줄 대학생 다섯 명과 인솔수사로 한 달간 동행한 적이 있었다. 예수회 학교가 자리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자 막연했던 두려움이 현실로 확 다가왔다. 그룹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무거운데 현지에 오니 안 그래도 서투른 영어는 더 형편없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도전은 따로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시각장애 학생들(visually impaired students)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공항에서 부모님과 함께 온 학생들을 만났을 때는 이 질문이 줄곧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질문 하나로도 고려할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 방법, 지켜야 할 에티켓, 조심해야 할 말이나 태도 등. 그런데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겨난 새로운 질문은 먼젓번 질문보다 훨씬 까다로워 보였다. “이들은 세상을 이제껏 어떻게 바라보았고, 지금 여기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친구들이 경험하는 세상을 내 방식이 아닌 이들의 방식 그대로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지닌 한계가 뚜렷했다. 나는 ‘못’ 본 적이 없었고, 또한 보이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지난한 과정이 없었다.

현지에서 학생들과 한 달 내내 죽어라 영어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함께 ‘더블데커’(붉은색 이층버스)를 타고, 의자는 큰데 정작 실내는 비좁은 혼잡한 런던의 지하철도 경험했다. 또한 점자책이나 영화를 통해 상상만 했던 해리포터 이야기를 킹스크로스 역에서 일부나마 현실로 만나기도 하고, 박물관에 전시된 몇몇 작품들을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서서히 시력을 잃게 된 한 친구는 자기가 기억하는 풍경으로 경험한 새파란 8월의 영국 하늘을 바라보고,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이 없었던 한 친구는 기러기 소리와 바닷바람에 실린 짠내음으로 한없이 이어지는 해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각장애 학생들의 문화와 내가 살아온 문화가 한데 모여 영국이라는 세상을 함께,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귀국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친구 A와 신호등 앞에 서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며 말을 건넸다.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 무슨 말을 할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이어졌다. “도로와 보도 사이에 턱이 낮아서 우리나라보다 걷기 편했어요.” 순간 말문이 탁 막혔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내 발밑은 줄곧 사각지대였던 것이다. A의 시선은 발에 있었고, 내 눈은 A의 시선에 미치지 못했다. 신호등 앞에 함께 서 있던 그 순간조차 둘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동안 최대한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애쓰면서 수월찮은 문제를 어떻게든 털어내 보려 했는데, A의 대답은 오히려 그 문제를 지금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숙제로 남겼다.

하느님을 따르는 여정에서도 때때로 이 숙제를 만난다. “우리는 각자 하느님을 이제껏 어떻게 만났고, 지금 여기서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각자, 그러면서도 함께 만나는 하느님이라면, 아까와 질문은 결국 같은 셈이다. 너에게는 보이는, 하지만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발밑에 계신 하느님을 뒤늦게서야 알아차리는 부끄러움은 분명히 반복될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허탈할 법도 하지만, 여정 자체에 희망을 둘 수 있다면 한번 가볼 만할 것도 같다. 그 ‘보이지 않음’조차 하느님께서 언젠가 당신 방식대로 풍요롭게 열매 맺어 주시리라 믿고 청하며 차근차근 걸어 나간다면 말이다.

(이 내용은 2020년 9월 27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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