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table Ground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나는 약속된 미래도 없이 용감무식(?)하게 로마행을 택했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일조차 그만두고 모두가 말리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신학의 길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로마에서의 생활은 홀로서기의 연속이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은 다들 자신을 파견한 수도공동체나 교구라는 안전한 디딤돌과 분명한 목적이 있었지만, 수도회 소속도 아니고 교구의 파견 또한 받지 않은 나는 줄곧 발을 디딜 땅조차 없는 곳에 선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입학서류를 내고 곧장 신입생 장학금이 있는지 알아보려 담당 교수님을 무작정 기다렸을 때, 단 6개월 연수한 이탈리아어 실력으로 강한 독일식 악센트를 가진 독일 출신 교수님의 이탈리아어 철학수업을 들었을 때, 난생처음 구술시험을 앞두었을 때, 내가 믿을 것이라곤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호의뿐이었다. 나는 부족한 이탈리아어 실력으로나마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그보다 더 애써 기도하는 공부방법을 택했다. 벼랑 끝에서 죽기 살기로 한 기도 덕분에 나의 지향과 전망은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고 싶은 열망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호의에 달려있고,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을 그분 보시기에 좋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지임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즈음, 이탈리아 전역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내가 사는 ‘산타 체칠리아 여성 신학원’의 주변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숙사 학생의 절반은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외출만 허락됨과 동시에 외부인의 방문은 일절 금지되었다. 기숙사 내의 공동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다. 평소 아무도 나오지 않던 기숙사 정원에 점심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따스한 봄볕 아래 거리를 두고 앉아 함께 웃고 떠드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는 마음이 약해져 있는 서로를 위해 사망자 숫자를 언급하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우스갯소리로 깔깔거리며 쾌활하게 지냈다. 봄을 맞은 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고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기숙사 방에 홀로 앉아 작은 휴대전화로 접하는 ‘시체가 너무 많아 군용 트럭으로 옮겨야 할 정도’라는 끔찍한 이탈리아 북부 소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정원 안의 작고 여린 생명들은 생기가 가득했다.

살아있음도 죽음도 우리 현존임을 생각해본다. 기숙사의 친구들과 격리 아닌 격리 상태에 있는 중에도 누군가의 할머니가, 이모가 세상을 떠나고, 가족이 아파서 입원했다는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바이러스가 아닌 암이나 다른 질병이 그 원인이었다.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어느 간호사가 ‘사실 이것은 우리가 늘 겪어오던 시간이고 해오던 일’이라고 말한 인터뷰를 기억한다. 친구 중 한 명은 자기 나라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이런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당시에는 전 세계가 무관심했던 일을 속상해했다. 늘 전쟁에서 시달리는 나라에서 온 다른 친구는 저장식품을 사는 것에 넌더리가 난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코로나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불편함과 불안, 혼란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미 오랜 현실이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를 생각한다. 포스트 코로나를 전망해야 하는 팬데믹 시기에 우리는 내 두 발이 딛고 있는 것이 단단한 땅이 아니라 사실 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를 알아차리고 깊은 어둠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것인지, 아니면 물 위에서도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게 하는 ‘사랑’을 믿고 살아갈지는 우리의 믿음이 결단한 선택에 따를 것이다. 근본적인 우리의 불안전성(instability)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허락하신 분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면서 나아갈 때, 우리는 팬데믹 시기에도 현재의 내 삶이 선물임을 깨닫고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2020년 8월 23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김나영 심포로사

스무 살, ‘젊은이의 피정’을 통해 이냐시안 영성을 접하고 빠져들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일을 꿈꾸던 중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진짜 내면의 열망을 발견했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2년간 서강대학교 교목처에서 청년사목을 담당했다. 스스로 seeker라고 여기고 seeker들의 동반자가 되고 싶어 현재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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