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실종된 날

나는 후각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서 동네 누나와 공놀이를 하던 중 서로 공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드는 찰나 누나 머리에 코를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쌍코피가 터져 방바닥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 후로 (누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나를 남겨두고 자기 집으로 달아나 버렸다!) 코는 나의 고질적인 약점이 되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내내 비염을 앓은 탓에 비염 치료에 좋다는 한약이나 환을 지긋지긋하게 달고 살기도 했다. 당시에는 효과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한동안은 ‘아, 쓸데없이 돈만 날렸네’하는 생각뿐이었지만, 오히려 약을 끊고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니 자연스레 완화되어서 그때 두 눈 질끈 감고 들이켠 한약이 뒤늦게 효능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마음은 편하다) 그러니 만약 사물 인식의 단계에 오감의 우선순위가 있다면 나에게 냄새를 맡는 행위는 가장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닐까.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내 후각이지만 그나마 가장 민감하고도 분명하게 반응하는 순간은 낯선 땅에 첫발을 디딜 때인 것 같다. 사실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놓고 자랑할 만큼 아주 많은 나라에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에 닿을 때마다, 특히 공항을 나서며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내 폐부 가득 들어차는 이국의 공기는 언제나 무딘 나의 감각을 일깨운다. 낯선 공간이 부여하는 적당한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

이는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도회에서 첫 서원을 발하고 처음과 두 번째로 이곳에 왔을 때는 모두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방문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바라고 바라던 대로 2년간의 파견을 받아 이 땅을 다시 찾은 날,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으나 공동체로 향하는 픽업트럭 짐칸에 앉아서 맞는 후텁지근한 바람결에는 그와 같은 두근거림을 일으키는 냄새가 진하게 묻어났다. 캄보디아 냄새. 딱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건 내게 캄보디아의 냄새였다. 기분 좋은 캄보디아의 냄새.

어느덧 이곳에서의 생활도 6개월 차에 접어 들어간다. 집이 아니라 찜통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날씨도 우기에 접어들며 이제 선풍기 바람 없이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선선(?)해졌다. (오늘 프놈펜 기온은 33℃/25℃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사도직 파견을 위한 크메르어 공부로 하루하루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현지까지 와서 온라인으로 언어수업을 듣고 있는, 정말이지 웃지못할 상황이다 보니 집 바깥을 나갈 일이 별로 없어 가끔씩 좀 지루할 때가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가벼운 충격을 받게 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때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 수업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꽤 많은 부분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혼자서도 집 근처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사서 먹을 줄 알게 되었고, 당장 길에 내버려도 가져가지 않을 법한 낡은 자전거를 타고서도 무법천지가 따로 없는 프놈펜 도로를 홀홀히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미사 중에는 의미는 잘 모르지만 선생님을 따라 앵무새처럼 연습한 제1독서를 느려 터진 속도로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현지인의 말을 어슴푸레하게 알아듣고도 열반에 이른 싯다르타 저리 가라 할 만한 염화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만큼 자연스레 캄보디아의 냄새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홀연히 사라진 후였다.

크메르어를 배우기 시작한 후 얼마쯤 지났을 때였을까. 매 수업을 마치기 전에는 당일 배운 표현을 복습하면서 이에 대한 예문을 만드는 시간이 있는데 아마 그날은 ‘원한다’라는 동사를 배운 날이었던 것 같다. “저는… 캄보디아 사람이… 되고 싶어요.” 노트북 화면 너머의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거짓말”이라고 했다. 내 말은 거짓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답은 진심과 거짓 그 사이 어디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솔직히 내가 이 땅에 아무리 오래 머문다 해도 이미 촘촘히 형성된 나의 성향 때문에 캄보디아 사람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내 편에서 갖은 노력을 하여 어찌어찌 적응한다 한들 여기 사람들이 나를 그들과 꼭 같은 하나로 받아 줄 리도 만무하다. 이제 겨우 반년 남짓을 산 주제에 생각의 날개는 언제나 그렇듯 먼 미래를 향해 날아가지만 아무튼, 친구사이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 크다면 한 없이 커다란 것이고 작다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런 희망사항. 그러니 캄보디아 냄새가 내 코 끝에서 돌연 사라진 사건을 두고도 그런 과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에서 함께 살았던 백발의 할아버지 선교사 신부님들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그분들 각자는 뼛속까지 한국인이 결코 아니셨지만 나와 다른 이질적인 냄새가 나는 분들도 아니셨다. 함께 있을 때면 우리는 같은 냄새를 풍겼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리고 온 후에도 여전히 나 자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과연 ‘캄보디아 냄새’는 어디로 날아가 버린 걸까? 그것이 조금이나마 나의 냄새가 된 것이기를…

4 Replies to “냄새가 실종된 날”

  1. 어쩜 글도 이렇게 예쁠까요? 울 수사님 증말 멋지네요.^^진정한 선교사! 난 여기 냄새가 아직도 낯설고, 계속 낯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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