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의 홍대에서 만난 예수님

예수회의 모든 연학수사들은 평소 매주 한 차례 사람들을 만나서 사도직 활동을 하는, 일명 ‘주중 사도직’을 한다. 나의 경우, 지난여름 우연한 계기를 통해 청년들이 함께 모여 교황 권고문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읽고 기도한 바를 나누는 모임인 ‘CHRISTUS VIVIT’에 참여하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홍대거리의 풍경은 언제나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 젊음이 쏟아내는 에너지를 담아내기에는 역시 홍대만한 곳이 없다. 그런데 이 사랑과 젊음의 기운이 가득한 홍대거리를 가로질러 ‘청년문화공간JU’를 찾아오는 청년들이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온 청년들의 갈망과 열정이 모임방을 가득 채운다. 나야말로 바깥에 나가서 젊음의 기운에 한껏 취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일까? 찾아오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적잖이 놀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목마름, 갈망을 듣고 공동체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주님, 여기 이 청년들을 꼭 좀 기억해주십시오. 오늘 이들의 발걸음이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독서모임을 통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기쁨은 청년들과 친구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었다. 무릇 친구가 된다는 것은 ‘내가 이만큼 잘난 사람이니 나와 친구가 되어볼래?’ 같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나야말로 많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해주겠니?‘ 같이 수줍은 고백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이 수줍은 고백이 이번 모임에서는 왠지 더욱 쑥스러웠고, 언제나 한 박자씩 늦기 일쑤였다. 예수회에서는 나름 ‘핵인싸(?)’지만, 청소년국 청년부라는 새로운 곳에서는 ‘아싸(?)’일 수밖에 없던 나는 많은 부분에서 조심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이들은 내가 친구가 되어달라고 고백하고 싶었던 바로 그 청년들이었다. 미안하게도, 그리고 고맙게도, 도무지 좁힐 수 없었던 한 박자의 간격을 메꾸어준 이들. 청년들은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먼저 겸손하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건네주었으며 사랑으로 다가와 주었다.

10개월이라는 긴 여정이 얼마 전에 끝났다. 지나고 보니 나는 언제나 내가 사랑하고 배려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받고 배려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족하고 가벼운 나의 나눔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공감하던 청년들에게서 같은 모습으로 내게 고개를 끄덕이시는 예수님을 본다.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청년사목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할 때조차 너그럽게 들어주던 청년들에게서 내가 하는 어떤 이야기도 너그럽게 들어주시는 예수님을 느낀다. 나의 부족함을 받아주고 나와 친구가 되어준 청년들을 통해 난 예수님 또한 나에게 그렇게 하고 계심을 체험한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읽고 기도한 바를 나누는 모임인 ‘CHRISTUS VIVIT’

모임을 시작하기 전 나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던 예수님처럼 청년들과 함께 걷고 싶었다. 청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한 사람의 수도자이자 청년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싶었다. 이제 엠마오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청년들은 자신들이 느낀 예수님을 증거하러 각자 떠나갔다. 성 이냐시오의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라는 말처럼 나 또한 말뿐만 아니라 나의 삶으로 그분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기를 청해본다.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난 여정을 걸어주셨음에 감사드린다. 예수님은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낙담하고 상처받아 부서진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셨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당신 사랑으로 가득 타오르게 해주셨다. 그러니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다하셨다. 바로 우리들의 엠마오, 홍대에서.

(이 내용은 2020년 7월 26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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