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선으로

전례실습 수업이 있었던 날의 일입니다. 이 과목은 사제품을 받기 위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 가운데 하나로서 직접 미사를 집전해보는 연습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료 수사님들의 실습이 이어지던 중 어느덧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잔뜩 긴장한 저는 제대용 미사경본에 두 눈을 고정한 채로 시작예식 문구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이 부분에 이르러 저는 그만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사랑’과 ‘성령’의 초성인 시옷과 ‘친교’의 초성인 치읓을 각각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음할 때의 입 모양이 서로 비슷한 이 두 자음을 정확히 소리 내고 있는지 판단을 내리는 일은 제게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따라서 미사 전에 어떤 순서로 제의를 입어야 하는지, 혹은 전례 도중 언제 양팔을 벌리거나 내려야 하는지 등과 같은 지침을 체크하는 것보다 제가 더 신경을 곤두세운 부분이 바로 저의 발음이었습니다. 비록 실습이긴 했지만 사제가 읽는 기도문을 한 문 장씩 읽어 내려갈 때마다 저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행여나 틀린 발음을 해서 신자분들의 마음에 분심이 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와 같은 마음속 소용돌이로 인해 정말이지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없었던 수업을 뒤로하고 방에 돌아와 홀로 우두커니 앉아서 묵주기도 한 꿰미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먼저 소리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네 살배기 아들 앞에서 망연자실하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마냥 절망하지 않고 아들이 당신의 목과 배를 만져가며, 그리고 입 안 혀의 위치를 보아가며 발음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을 통해 아들에게 조금씩 소리의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한 헌신 덕분에 아들은 침묵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양편에 속한 모든 이의 문화에 맞추어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억의 조각들 틈으로 뒤이어 반갑게 인사를 건넨 사람들은 같은 예수회 동료인 Y 수사님과 어느 양로원에서 만났던 S 할머니였습니다. 발음에 무던히도 신경을 써가며 형제들 앞에서 첫 강론을 했던 날, Y 수사님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셨습니다. “수사님의 정성이 들어가니 미사가 더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에요. 우리도 수사님이 강론할 때는 보다 집중해 듣게 되니 감사한 일이지요.” 또한 수련수사 시절 한 달간 머물렀던 양로원에서 종종 말벗이 되어드리곤 했던 S 할머니는 어느 날 발음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는 제게 또박또박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사님의 말을 들으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키우셨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수사님을 통해서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 예수님께 감사드려요.”

문득 훗날 사제로서 제대 위에 서 있을 제 모습을 예수님의 시선이 아니라 순전히 저 자신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침묵과 소리 양쪽 세계 모두에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고자 하시고, 듣지 못하는 영혼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수행하고자 하시며, 당신 스스로 그리하셨듯이 자녀를 통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신다는 점이 제 가슴에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Y 수사님과 S 할머니, 그리고 특히 사랑하는 엄마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아까 연습했던 경문을 조금 더 씩씩하게 되뇌어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 글은 3월 22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 되었습니다.)

One Reply to “예수님의 시선으로”

  1. 수사님^^
    수사님과 함께 한 모든 시간들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수사님과 함께 할 그 시간들에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