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소명

저희 예수회의 양성과정 안에는 수도회가 하는 일(사도직)을 미리 체험해 보는 사도직 실습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은 예수회 안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도직 혹은 교회 내 다른 기관으로 파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회 입회 전에 외과 의사였던 경험을 살려 현재 모교 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입회 후 5년 만에 돌아간 병원에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새로이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설렘도 잠시, 저는 주 2~3회의 야간당직을 포함해 80~100시간의 살인적인 근무 강도에 지쳐 이내 제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병원에 있는 그 누구도 저를 수도자로 보지 않고, 그저 동료 레지던트로만 바라보는 현실에 제 마음 또한 점점 메말라 갔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어느 날 작은 위안과도 같은 하느님의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때는 제가 일한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적응하기에도 정신없던 무렵이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급한 콜이 왔습니다. 병동 환자 A님의 혈압측정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급히 달려가면서도 제 마음에는 불안함이 먼저 앞섰습니다. 평소 치료실에서 마주한 A님은 앙상하게 말라 뼈만 남은 모습이었습니다. A님은 산재로 인한 경추 손상으로 전신이 마비된 채 이미 10여년을 투병하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에는 암 말기 진단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도착해보니 A님의 곁에는 오랜 기간 그 분을 간병해 온 부인이 오열하고 있었고, A님은 얕은 숨만 간간히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연명 치료는 안 하기로 이미 동의하였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임종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A님의 부인이 갑자기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딸이 아버지의 임종을 볼 수 있도록 30분만이라도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저를 본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부인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남편의 귀에 대고 말을 하면,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이에 부인이 A님의 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수고했어, 우리 딸 오고 있으니까 보고 가야지. 조금만 더 힘내.”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미 의식이 없는 코마 상태였지만 부인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다시 맥박이 뛰고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따님이 도착하기까지 30여분 동안 A님의 부인은 남편의 손을 잡고 계속 말을 건넸고, A님도 온 힘을 다해 힘들게 숨을 이어 갔습니다.

마침내 따님이 도착했고, 기다리던 딸을 만난 A님은 5분도 못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가족들이 슬피 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두 달 넘게 A님을 살폈던 담당 간호사 선생님도 눈물 짓고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담담한 모습으로 사망 선언을 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날 만큼은 저도 울먹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망 선언을 했습니다. 부끄러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의사에게 환자의 임종은 치료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A님의 임종 순간에 함께한 경험을 통해, 그리고 눈물을 통해 저는 제가 ‘사람’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영혼이 삶을 마감하는 자리에 가족이 아님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거룩한 소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로도 많은 분들의 사망 선언을 할 기회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비록 매번 눈물을 흘리게 되지는 않겠지만, 임종을 맞이하는 분 앞에서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사망 선언을 하고 싶습니다. 또한 돌아가신 분의 영혼과 남은 가족 분들을 위해 짧게나마 침묵 중에 기도합니다. 이것이 저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소명이기에.

(이 글은 1월 26일자 서울대교구 청년주보에도 동시 기고 되었습니다.)

One Reply to “나에게 주어진 소명”

  1. 그래 수고 많구나 우리모두 인생극장에서 단 한번 주어진 기회에
    연기하는 것이 아니겠나
    지나고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남도록 해보자
    늘 응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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