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묻다

길을 걷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문득 수련수사 시절 노동실습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노동실습은 짧은 기간이지만 신분을 숨긴 채 공장에 취업하여 육체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되어보는 시간이었다. 녀석을 처음 만난 그날 밤도 난 공장에서 종일 일에 시달린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슈퍼마켓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가게 앞에 보금자리를 잡은 듯한 그 고양이는 여느 도둑고양이와는 달리 내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신기한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가니 오히려 녀석은 내게 다가와 몸을 비벼대었다. 나는 귀여운 놈을 쓰다듬어 주었고, 녀석도 내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그날 이후, 힘든 공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 근처에서 그 고양이를 찾는 것은 내 퇴근길의 작은 낙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그 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지만 보이지 않았기에, 내가 슈퍼 근처에서 멈추어 서는 날 또한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한 2주 정도가 지났을까. 우연히 슈퍼 근처에서 놈을 다시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으나 녀석은 전과 달리 몸을 움찔하며 내게서 멀어지며 거리를 두었다. 더 다가가면 더 움찔거리며 더 거리를 두었다. 그런 나를 지켜 보시던 슈퍼 아주머니가 한 말씀 하셨다.

“사람을 잘 따르던 애였죠. 저도 먹을 것을 자주 주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척하다가 발로 찼는데, 그때부터 사람을 무서워해요.”

그 말을 들으니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며 가까이 오고 싶어 하면서도 다가서면 또 상처받을까 자꾸만 거리를 두는 녀석이 좀 안쓰러웠다.

그때 그 고양이가 내게 물었던 것은 사랑과 상처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사랑은 상처 없이 불가능한 걸까. 상처받을 수 있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자신의 연약한 배를 내어 맡긴 것은 진정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나는 연약한 내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거부당하고 상처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긴 적이 있었던가. 내게 몸을 비비며 흰 배를 드러내며 누웠던 그 녀석처럼.

고양이를 가지고 ‘감히’ 십자가에 대한 감상에 젖고 싶진 않지만, 문득 예수님이 떠올랐다. 상처받고 거부당할 수 있음을 아시고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셨구나. 당신의 연약한 몸을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 맡기시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구나. 그 연약한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힐 수 있다는 걸 아시고도 그분께서는 사랑하길 멈추지 않으셨구나.

부활이 없었더라면 참 슬펐을 것이다. 내 주위에서 맴돌기만 할 뿐 결국 다가오지는 못하는 고양이처럼.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연약하게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사실은 강함이라고, 아주 강한 사랑이라고 나지막하고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그분께 상처를 드렸을지라도 그분께서는 못 자국이 있는 손으로 우리를 또 껴안고자 하신다.

천국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녀석이 내 앞에서 또 한번 흰 배를 드러내며 몸을 맡겼으면 좋겠다. 그때는 녀석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오래오래 쓰다듬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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