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필리핀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마냥 포근해 집니다. 특히나 저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데 모여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는데, 정말이지 저에게는 큰 기쁨이자 축복입니다.

하루는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다음 학기부터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는 아이들의 진학식을 미사로 치르게 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사 전례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주례 신부님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없이 귀여운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연습에 앞서 20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강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저를 마냥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데, 아마도 한국에서 온 아저씨가 무척이나 낯설었나 봅니다.

이윽고 전례 교육이 시작되었고, 저는 아이들이 저를 잘 볼 수 있도록 전면 단상 위에 섰습니다. 전례 교육은 미사 중에 언제 일어나고 앉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또 언제 어떤 응답을 해야 하는지 등을 익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었던 것은 바로 ‘서 있을 때는 항상 기도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제가 하는 그대로를 따라 기도손을 하면 된다고 여러 차례 당부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그 시간만큼은 바른 기도손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전례 교육은 제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유치원생들에게는 미사 통상문의 표현이 익숙할 리 없었고, 무엇보다 아직 왼쪽과 오른쪽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채 마치 거울을 보듯 제 모습 전부를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들이 간혹 제가 하는 사제 고유의 동작까지도 따라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바르게 기도손을 하는 쪽으로만 교육의 중점을 두게 되었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마저도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반복되는 연습에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또 저도 조금씩 지쳐가던 무렵, 저는 기도손을 하던 중 무심코 옆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전부 약속이나 한 듯 저를 따라 옆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 모습에 저도 웃고, 선생님들도 웃고, 또 아이들도 함께 그렇게 한참을 같이 웃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유치원생들의 초등학교 진학을 축복하는 미사가 열렸습니다. 저도 그 미사에 함께 참여해서 아이들이 진정 행복하기를 기도 드렸습니다. 연습의 효과가 있던 것인지 아이들은 기도손 뿐만 아니라 모든 미사 전례를 훌륭하게 잘 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연습 중에 저를 따라 모두 옆머리를 긁적이던 그 모습이 계속 떠올라 미사 내내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그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무척이나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문득 수련기 때 수련장 신부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비록 당시에는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그 말씀을 하시던 신부님의 모습만큼은 매우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당신의 추억을 떠올리며 말할 수 없이 평화로운 미소를 짓던 신부님의 그 모습이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가운데 이들이 정말 특별한 힘을 준다는 것을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주는 그 힘이 무엇인지 온전히 풀어내지는 못하겠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유치원 아이들과 전례교육을 함께 한 이후 제 마음 안에 계속 올라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손이라고 하는 아이들의 그 작디작은 정성 하나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당신의 무한한 은총을 받아들이는 참된 응답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나름의 성찰도 하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치는 정성된 성호경 하나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하루의 시작을 무한히 새롭게 열어주지는 않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 긋는 정성된 성호경 하나가 근심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무의미하게도 여겨진 하루를 한없이 충만하게 해주지는 않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긋는 정성된 성호경 하나가 황량하게 소란스러운 내 마음을 고요한 평화로 채워주지는 않을까? 그럴 것이다. 하느님이시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코 10,14)라는 주님의 말씀에 이제는 고개뿐 아니라 온 마음이 절로 끄덕이게 됩니다. 아이들이 주는 힘이란 다름 아닌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자그마한 정성 하나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비로소 깨닫게 해주는 참된 응답이 된다는 것을 믿고 바라고 또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그 작디작은 정성 하나가 말입니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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