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장학금

작년 11월의 어느 날,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공동체 예산을 다루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한 해의 지출을 돌아보며 다음 해 수입과 지출이 적정한지 따져보는 자리였습니다. 수입이 넉넉한 것인지 아니면 삶이 청빈한 것인지 적지 않은 돈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분이 뜬금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줍시다.” 저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장학금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도 장학금을 준다고?’ 곧 다른 분이 말을 받았습니다. “공동체 이름을 따서 ‘성 요한 베르크만스 장학금’은 어떨까요?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은 대학원생에게 줍시다.” 공동체 구성원 과반이 찬성하였고, 공동체 재정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저로서도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2019년 저희 공동체 예산안에 ‘장학금’ 항목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봄학기가 찾아왔습니다. 장학금 줄 때가 되었지만 정작 그 대상자를 어디서 찾고, 또 무슨 기준으로 선발해야 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평범한 수도자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받은 경험은 있어도 준 적은 없으니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했습니다. 결국 장학생을 찾지 못한 채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학기가 시작하고서도 한참이 지난 9월 말, 저희 공동체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두 명의 학생에게 생활비 수준의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장학금 지급에 앞서 학생들을 공동체에 초대했습니다. 작은 경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미리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아 만들어놓은 장학증서도 전달했습니다. 비록 내년이 되면 다시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제1회 성 요한 베르크만스 장학금 수여식’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학부생 시절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탓인지 여러 번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보통 장학금 수여식 행사는 큰 무대에서 열립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진행자가 사회를 맡고, 홀 중앙에 위치한 단상에는 장학회 대표님과 이사님들이 줄지어 앉아 계시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화려한 무대를 보면 약간은 주눅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큰 돈을 거저 받았다는 마음까지 더해지면 온 몸으로 감사를 표현하게 되곤 했지요.

헌데 베르크만스 장학금 수여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장학증서를 주는 일이 처음이었던 원장 신부님은 누군가에게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꽤나 부끄러운 듯 했습니다. 학생들 또한 그런 신부님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멋쩍은 듯이 수줍게 웃기만 했습니다.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모두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조금은 이상한 장학금 수여식이었지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저희는 이 누추한 공동체까지 장학금을 받으러 와준 학생들이 고마운 동시에 장학금치고는 너무나도 적은 액수에 미안했습니다. 주는 이는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것 같아 민망하고 (아무리 공동체 식구들이 열심히 사도직을 해서 번 돈이라고는 해도 이는 곧 예수회의 것이니 마냥 제 돈처럼 생색낼 수는 없겠지요), 받는 이는 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부끄러워하니 당혹스러운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려니 지금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무엇보다 흐뭇했던 점은 선한 일을 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바로 그 순진함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성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성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자, 나는 이렇게 도덕성을 확보했으니 내 영혼을 지켰다는 식의 작은 정의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이 갖는 해방적 역할을 강조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악의 평범성’에서 ‘악의 합리성’으로: 홀로코스트의 신성화를 경계하며』

오랜 시간 저는 부끄러움이 삶에서 거추장스럽고 쓸모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날을 계기로 부끄러움을 긍정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저의 삶을 타인과 나누는 일에 부끄러움이 좀 더 가미되어도 괜찮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이 주는 나약함이야말로 제 자신을 정의롭게 하기 보다는 ‘나와 네’가 좀 더 가까이 다가서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One Reply to “부끄러운 장학금”

  1. 인간이 원죄를 저지른 후 최초로 느낀 감정이 ‘부끄러움’이지요. 인간 원초적 감정이라는 거지요. 이를 잃으면 인간으로서 최소한도 못되는 거죠. 근데 좋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은 다른 이름의 부끄러움 같네요. 좋은 글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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