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설렘을 좋아하세요?

저는 어려서부터 추위를 견디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유년기에는 조금만 찬 공기가 돌아도 금세 볼이 빨갛게 얼어버리는 탓에 친구들이 늘 저를 골려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이 겨울, 한 해의 끝자락은 제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간이 어린 저에게 가져다 주었던 설렘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 제가 좋아했던 12월’에 대한 기억의 조각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던 어느 날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아파트 16층 창 밖을 내다봄과 동시에 눈에 들어온 하얀 세상과 가슴 벅참,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을 때 가슴 전체에 느껴지던 공기의 차가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새긴 첫 발자국,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눈사람은 적어도 제 눈에는 참 예뻤습니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홀로 집으로 걸어오던 날의 기억도 생각납니다. 두 꼬막손 사이에 들려있던 작은 사이즈의 핫초콜릿 한 잔, 입 안에 감도는 따뜻한 달콤함에 저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행복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시 그 맛을 느낄 수 없음은 제가 이제 여간 해서는 핫초콜릿을 마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는 성탄미사와 관련한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드리는 성탄 밤 미사와 미사 후 나눠주는 간식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미사에 조금 앞서 펼쳐지던 주일학교 축제가 더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의 탄생을 다룬 연극에서 제가 요셉 역할을 맡게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마리아 역을 맡은 친구는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끼가 많았습니다. 꽤나 내성적이었던 저로서는 대사 한 마디 동작 하나가 하나같이 엄청난 도전이 되는 일이었기에 연습을 하는 내내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 하나 때문에 모두의 연극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절박한 심정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결국 공연 당일, 저는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저만의 인생연기’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축제가 무사히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면 부모님은 으레 비디오 가게에 들러 디즈니 애니메이션 한 편을 골라 밤늦게까지 보게끔 허락해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정말이지 참으로 완벽한 하루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날을 앞두고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제가 그 무엇보다 간절히 기다렸던 것은 단연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도 내가 원하는 선물을 알아서 척척 가져다 주실까?’ ‘걸어 놓은 양말이 너무 작아서 조그만 선물을 주시면 어떻게 하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지만 깨어 있으면 안 오실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선물을 받을 수 없는데 어쩌지?’ 돌아보면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항상 이런 걱정과 기다림으로 밤을 지새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차마 눈으로는 확인을 못하고 먼저 누운 자세 그대로 팔만 쭉 뻗어 침대 머리맡에 가져가 선물이 잘 배달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신이 나서 선물을 열어보았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산타 할아버지는 신기하게도 매번 제가 원하는 선물이 뭔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가져다 주는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집에서 놀다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모형 장난감 자동차가 잔뜩 들어있는 의문의 상자를 발견해서 부모님을 당황시킨 일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선물은 그 해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배달되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조성모 3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더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못내 아쉽고 씁쓸했던 저의 첫 ‘어른체험’이라고나 할까요?

피정으로 2019년 한 해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내심 ‘언제 다시 겨울을 맞으려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잠시 주머니 밖에 손을 내밀었다가도 얼른 도로 집어 넣을 만큼 추운 계절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깨닫고 새삼 놀라게 됩니다. 요즘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문득 제 스스로에게 여전히 어렸을 적 모습처럼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성탄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과 같은 만큼의 두근거림은 없습니다. 저의 그 많던 설렘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이제는 정말 완전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요?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번 대림시기를 보내며 저는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의 설렘을 품어보겠다고 마음먹어 봅니다. 더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지 않지만, 같은 마음으로 이번에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려보려 합니다. 늘 습관처럼 맞이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새로운 한 해를 함께할 나의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설렘 가득한 12월의 대림시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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