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2019 FIFA 17세 이하(U-17)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남자 대표팀 선수들이 거둔 성과가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 다소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표팀은 그러한 무관심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탄탄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8강에 진출했습니다. 저는 청소년 대표팀(20세 이하와 17세 이하) 및 올림픽 대표팀(23세 이하) 선수들과 그들의 경기에 무척이나 관심을 기울이는 편입니다. 성인 대표팀도 물론 좋아합니다만, 청소년 선수들의 플레이에서는 그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만의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원석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열렬한 응원을 보내줄 뿐이지만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여 그다음 연령대 대표팀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때면 마치 제가 그들을 키운 것과 같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경기 후 환호하고 있는 U-17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 (사진출처: SBS뉴스)

제가 응원하는 어린 선수들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선수는 성남 FC의 미드필더 김동현(1997년생) 선수입니다. 제가 김동현 선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 때문입니다. 예수회에 입회하기 전에 저는 축구전문 기자를 꿈꾸었습니다. 사랑하는 축구와 관련된 일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지만 선수를 할만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기자를 장래희망으로 정한 것이지요.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기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에 관한 지식을 배웠고, 현장경험을 쌓기 위해 경기도 대학생 기자단에 입단하여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일 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는데, 그때 제가 처음으로 작성했던 기사가 바로 김동현 선수에 관한 인터뷰였습니다. 당시 김동현 선수는 포항제철중학교 소속 선수로 전국체전에 참가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MVP상도 수상했습니다. 당시 운이 좋게도 동현 군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저는 대회 최고의 선수에 관한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저는 꾸준히 동현 선수의 소식에 관심을 가지며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냈습니다. 몇 년 뒤 포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 진학했다는 뉴스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접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소식을 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유소년 혹은 청소년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냈음에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저 그런 선수에 머무르는 케이스를 자주 보았던 터라 그 친구도 그렇게 된 줄 알았습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지난 9월에 U-23 대표팀 선수들이 소집되었습니다. 내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발표된 선수명단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바이에른 뮌헨 유스 출신 정우영을 비롯하여 오세훈, 엄원상, 전세진 등 지난 FIFA U-17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들이 대거 발탁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반가운 이름도 보였습니다. ‘김동현.’ 제가 알고 있는 그 친구가 맞는지 반신반의하며 인터넷을 검색해보았고, 어렸을 때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그러나 훨씬 듬직해진 동현 군의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성남FC에서 뛰고 있는 김동현 선수 (사진출처: 성남FC)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니 김동현 선수는 제가 수련원에서 있었던 2017-2018년 사이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뒤 K리그2 광주FC에 임대되었습니다. 광주FC에서는 경고 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했던 한 경기를 제외하고 전 경기에 출장하여 3골 5도움을 기록했는데, 이는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준수한 활약입니다. 동현 선수는 이후 포항에 복귀하여 구단 역대 최대 이적료를 갱신하며 성남FC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김학범 감독은 김동현 선수를 이번 대표팀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대표팀에 발탁되기까지 동현 선수가 기울였을 수고와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결과물 앞에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히 성장했고 마침내 U-23 대표팀에 승선했습니다. 앞으로 도쿄 올림픽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도 들어가야 하고, 이후에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활약해야 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성장을 축하해주고 싶습니다.

김동현 선수와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수련원에서 함께 살았던 어느 신부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저는 수도 성소가 맞는지, 예수회 성소가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불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신부님께서는 당신은 예수회 성소가 맞는 것 같다고 하시며 그 이유를 ‘성장’에 두셨습니다. 예수회에 입회한 후 전보다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당신을 예수회로 부르셨음을 확신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회 입회를 준비했던 시기, 이 년 동안의 수련기, 그리고 11개월 차에 접어든 신학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저에게서도 같은 ‘성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론 정체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퇴보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 또한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었음을 고려해본다면 저는 분명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저의 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분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었을 뿐입니다. 허나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제가 먹고 싶을 때만 맛나게 먹고, 내키지 않을 땐 심하게 투정을 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그런 저를 나무라지 않고 그분의 방식을 통해 천천히 성장시켜주셨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간을 기점으로 내일 오전에 멕시코와의 U-17 월드컵 8강전 경기가 펼쳐집니다. (경기에서는 0-1로 석패하며 아쉽게도 선수들의 도전은 8강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또한 2019 두바이컵 친선 대회의 개막을 준비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성장의 아이콘, 김동현 선수의 건승을 빕니다. 아울러 그들과 부족한 저의 성장을 위해 지금도 힘써 일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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